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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은 우리에게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행복, 적어도 ‘인간적인 뜻에서의 행복’을 누릴 권리는 없다. 우리가 행복한 가정, 멋진 집, 아름다움, 번영, 그리고 인기 또는 명성을 차지할 자격은 없다. 하나님은 사실상 이 세상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계획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60년대 한 동유럽 국가의 수도에 있는 개인 집에서 설교하고 지낼 때의 일을 잊을 수 없다. 나는 말씀에 대해 갈급해 하는 꽤 많은 수의 그리스도인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있었다. 말씀을 전하고 있을 때, 문이 열리더니 놀랍게도 내 오랜 친구 카알이 걸어 들어왔다. 나는 그가 아직 교도소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카알과 나는 교회를 위협하고 신자를 옥에 가두며 성경을 없애 버리는 어떤 나라에서 함께 일했다. 카알은 전도를 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3년 금고형을 받았다. 그리고 이제 나는 다른 나라에 있는데 카알이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이다.

당신도 상상할 수 있겠지만 나는 미친 듯이 기뻐 날뛰었다. 이런 경우에 보통 사람들이 하듯이 우리는 함께 끌어안고 울었다. 마침내 우리 모두가 진정되었을 때 아주 조용해졌다. 나는 나보다 카알이 우리 모두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칠 수 있음을 알았다. 그곳에 있었던 모든 사람은 언젠가 그들 역시 카알이 치른 것과 같은 희생을 치러야만 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잠시 동안 감옥에서 겪은 일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그러고 나서 그곳에서 유일한 외국인이었던 나에게 돌아서더니 “앤드류, 네덜란드에는 신앙 때문에 투옥된 목사가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런 이상한 질문은 처음 받아보았지만 대답을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왜냐하면 네덜란드에서 투옥되는 목사가 있다면, 그 이유는 그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없네”라고 나는 그에게 대답했다. 내 대답이 카알에게 고통을 준 것 같았다. 그의 나라에서는 훌륭한 그리스도인만이 투옥되었다. 그는 그 점을 잠시 생각하더니 나에게 물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을 받고 나는 당황했다. 핍박받으며 살고 있는 이 형제 자매들에게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우리 나라에는 기독교 서점이 많이 있으며, 마음대로 성경을 소유할 수 있고, 원한다면 일주일 내내 교회에서 설교도 할 수 있으며, 옥상에 서서 복음을 전파할 수도 있고, 텔레비전과 라디오 그리고 잡지를 통해서도 설교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네덜란드에서는 그러한 모든 수단을 사용하여 복음을 전하며, 밖으로 나가 이웃 사람을 교회로 초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카알의 나라에서 그런 일을 했다가는 감옥행이 될 수도 있었다. 나는 “우리는 직장 동료에게 예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네. 우리는 누구에게든 성경을 줄 수 있다네”라고 말했다.

회중을 둘러보니, 그들은 내가 하고 있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그들의 이해를 초월하는 것이었다. 갑자기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핍박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와 같은 이야기를 하다니 어리석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말을 멈췄다. 그러나 나는 카알의 신비한 푸른 눈과 진지한 얼굴이 나를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는 입을 열었다. “앤드류, 그것이 모두 사실이라면 네덜란드 그리스도인은 디모데후서 3장 12절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디모데후서 3장 16절 말씀은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이다.

브라더 앤드류(오픈도어 설립자)

오픈도어선교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