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jpg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31_45)


마태복음 25장은 예수님이 모든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재림할 때를 3가지의 비유로 말하고 있습니다. 열 처녀와 달란트 그리고 양과 염소로 구분하는 비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34절에서 주님과 함께 영광가운데 있는 양으로 분류되어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복 받은 자들이라고 말하면서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을 것이라고 축복합니다.
왜 이런 복을 받았습니까?
그것은 35절~36절에서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혀주었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다고 합니다.
반면 왼편의 사람들을 향해 저주를 받은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주님의 말을 들은 이들은
“주여 제가 언제 그렇게 했습니까?
제게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저는 주님을 그렇게 무시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합니다. 이들은 자신만만할 정도로 당당한 사람들입니다. 
여기에서 문제는 누구에게 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주님이 말합니다. 열 처녀의 비유에서 보았듯이 기름을 준비해야 합니다. 기름이 의미하는 것은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받은 달란트를 어디에 쓰느냐하는 것입니다. 달란트를 사용하는 것 보다 어디에 썼느냐고 중요합니다. 주님의 기준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하십니다.

지극히 작은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베푸는 자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사람입니다.
나와 친하지 않은 사람이고 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즉 내가 잘하면 나에게 유익함이나 실리를 챙길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내 자식은 내 삶에 굉장히 중요합니다. 자식의 인생이 망가지면 내 인생에 막대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중요한 사람입니다. 교회에서 목사는 중요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극히 작은 자는 아닙니다. 지극히 작은 자는 돌보거나 돌보지 않아도 아무런 영향이 내게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입니다. 세상에 다시 보지 않을 사람처럼 느껴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시간과 물질을 어디에 사용하느냐가 최후의 심판의 기준이 됩니다. 얼마나 예배를 빠지지 않고 잘 했느냐? 십일조와 헌금 그리고 봉사를 많이 했느냐가 아니라 지극히 작은 자에게 어떻게 했느냐? 하는 것이 심판의 기준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극히 작은 자에게 물 한 모금을 주고, 자기가 입던 옷을 벗어주는 것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돌아보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이제 재림의 주가 가까워 옵니다.
어떻게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할까요?
재산을 몽땅 팔고 집도 팔고서 ‘주여! 주여’하며 자기의 소견에 좋은 대로 할 것이 아니라 등불을 준비하되 기름이 떨어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즉 성령의 충만을 받고 권능을 가지고 주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지극히 작은 자를 찾아가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길 잃고, 헐벗고, 굶주리고, 영적으로 방황하는 자를 찾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다시 오실 그 때에 창세 때부터 준비한 영원한 축복으로 우리를 부르실 것입니다.

미국 아름다운교회 고승희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