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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했지만, 이 말을 다른 말로 바꾸면, ‘열등감은 쓰고, 그 열매는 행복하다’이다. 행복으로 초대하는 초청장은 곧 ‘열등감’이다. 당신은 그 초청장을 몇 장이나 손에 쥐고 있는가. 초청장에 따라 행복 지수가 달라진다는 것을 상상해보라. 한 장뿐인 초청장이라면, 한 번의 행복을 누릴 수 있고, 두 장의 초청장을 손에 거머쥐고 있다면 당신은 두 배의 행복을 맛볼 것이다. 그렇다면 세 장의 초청장을 갖고 있다면 과연 몇 배의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이 글을 읽는 독자의 수준에 따라 다른 삶을 살아갈 것은 뻔하다.

그러나 필자가 생각하는 행복지수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데 한마디로 로또복권에 당첨된 셈이다. 로또 1등 당첨은 벼락 맞을 확률보다 통계적으로 낮은 확률게임인데도 인생역전을 바라고 매주 수백만 원어치의 복권을 구매하는 복권 중독자들도 수두룩하다. 인생역전을 꿈꾸는 사람들은 꼭 그렇게 로또 당첨만으로 인생역전을 꿈꾸다가 패가망신하지 말고, 또 돈벼락에 불행한 삶을 선택하는 것보다 마음의 로또 복권인 ‘열등감’을 극복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해지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당신은 열등감을 아직도 부끄러움과 수치심의 불행의 대명사로 잘못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엘리너 루즈벨트는 “누구도 당신의 허락 없이는 당신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할 수 없다”라고 했다. 열등감을 이해하는데 한마디로 이 말보다 더 용기 있는 말은 없다. 내가 열등감을 느끼는 것도 우월감을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로 내가 허락하지 않으면 결코 느낄 수 없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내 의지와의 상관없이 상처를 일으키는 사건은 하루에도 수도 없이 많이 일어난다. 그렇다고 그 모든 감정이나 사고들이 나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것은 고작 한두 개에 불과하거나 일어나지도 않을 불확실한 괜한 걱정들이다.

그 상처를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나와 관련된 문제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거부할 것인가는 전적인 내 의지에 달렸다. 내가 하찮은 일이지만 걱정하고 근심하다가 큰일로 생각하고 상처받기로 작정하면 나는 상처받을 수밖에 없으며, 큰일이지만 상처는 무슨 상처냐며 웃기지 말라는 식으로 대처하면 보란 듯이 그 일은 별것 아닌 웃기는 해프닝으로 끝난다.

c11.jpg선물박스는 퀵이나 택배로 배송되는데 겉 포장에는 거창하게 멋진 글씨로 ‘최원호 님 앞’이라고 전산으로 찍혀있지만 내가 주문한 것이 아니라면 아니라고 수신거부 하면 된다. ‘고객님 앞으로 열등감 한 박스 무료 선물 도착이요’ 한다면 이를 감사하게 받거나, 아니면 당장 그 자리에서 반송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오죽하면 그럴까. 열등감도 공짜이기에 두말 없이 가슴속에 가득가득 쌓아두는 특성일까. 어쩌면 우리 국민만큼이나 열등의식으로 가득 찬 민족도 없을 듯하다.

나라별 행복지수를 비교하면 그것은 곧 열등감의 지수와도 비슷하다. 행복은 나의 행복만이 행복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보고도 행복함을 느낄 수 있어야 진정한 행복의 출발이다.

최원호 서울한영대학교 겸임교수, <열등감, 예수를 만나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