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퉁이돌선교회(대표 이 삭)가 개최한 제41회 선교 컨퍼런스가 지난 7월 열렸다. 제41회 모퉁이돌선교컨퍼런스는 ‘내 백성을 위로하라’는 주제로 진행됐으며, 제40회까지 실시됐던 모퉁이돌선교학교는 제41회부터 ‘선교 컨퍼런스’로 변경되어 실시되고 있다. 다음은 선교 컨퍼런스에서 모퉁이돌선교회 현장 선교사가 전하는 중국 교회의 이야기다.

cs1.jpg중국에서 지난 8년 동안 사역하며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되고 가혹했던 문화혁명을 거치는 동안 완전히 사라졌다고 단정했던 중국교회는 1979년 개혁개방이 되었을 때 8천 만 명이나 되는 성도들을 보고 세계가 깜짝 놀랐습니다. 한국교회는 주일예배, 수요예배, 금요철야, 구역예배, 총력전도주일, 일대일 새신자 양육 등 교회성장을 위한 많은 예배와 프로그램들이 이렇게 요란스러운대도 도리어 교인수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문화혁명이 일어나면서 정부가 인정하는 삼자교회마저도 문을 닫게 했습니다. 가정교회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수요예배도 없고, 새벽기도, 금요철야도 없습니다. 뜨겁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교회도 없습니다. 아니 환경적으로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모임 자체가 힘든 나라입니다. 더군다나 신학교육을 마친 목사님도, 신학자도, 설교자도, 목회자도 많지 않습니다. 지금도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로 복음을 자유롭게 전하며 활동할 수 없으며, 모든 것이 자유로워 보이지만 아직도 기독교 활동은 많은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중국에는 전도지 들고 길거리에서 전도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런데 중국교회는 지금 매일 2만 5천에서 3만 명이 예수를 믿고 새 신자가 되고 있습니다. 세례교인이 1년에 100만 명 씩 증가되는데 이 숫자는 천명이 모이는 교회가 천개씩 세워지는 것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전체인구 13억 가운데 기독교인은 1억4천만 명이 됩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렇게 부흥하는 중국교회를 보며 정말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질투가 나고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도대체 중국교회가 이렇게 축복받을 이유가 없는데 왜 하나님이 이렇게 축복해주셨는지 이해되지 않았는데 얼마 전 서진선교를 위해서 카스 지역을 방문해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중국의 국민당과 공산군이 전쟁을 하는 너무나 혼란스러웠던 1946년 하나님께 “예루살렘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비전을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팀은 ‘서북영공단’으로 1947년도 장곡천 목사님을 중심으로 중국산동지역의 대학생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할 때 “세계 교회가 중국을 위해서 선교를 했듯이 이제는 중국도 세계교회에 선교의 빚을 갚아야 한다.”는 비전을 주셨습니다. 그들이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이 서쪽선교 중국말로 서북선교에 대한 비전을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에 순종하여 1947년  선교팀을 결성하고 산동지역에서 약 6천Km의 거리를 걸어서 개인전도하며 카스까지 갔습니다. 그들이 ‘쿠알라’라는 지역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께서 “이 땅에는 너의 집이 없다. 천국에 가야 너의 집이 있다. 그때까지 계속해서 쉬지 말고 끊임없이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카스 지역을 넘어 중국국경을 넘어 아프가니스탄 지역으로 들어가려 할 때인 1949년 중국공산화가 되었습니다. 국경이 막혀 더 이상 예루살렘을 향해 갈 수 없게 되자 그들은 때를 기다리며 고난과 핍박을 당하면서 복음을 전했고, 문화혁명 때 감옥에 가서 모진 고통을 당하면서도 선교지인 카스를 떠나지 않고 사역하다가 그곳에서 죽어갔습니다. 비록 중국국경은 넘지 못했지만 그들의 가슴속에 불타는 서진선교의 열정은 하나님도 인정하시고 중국교회를 축복하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또 다른 그룹이 있습니다. 서안 조금 지나서 ‘펑샹’이라는 지역에 허드슨 테일러가 중국내지선교회를 세우고 서북성경학교를 설립하였습니다. 1946년, 이 학교의 학생들과 교수들에게 하나님은 서쪽 다섯 개 성에 복음을 전하고 카스를 지나 아프가니스탄, 이란, 이라크, 아라비아, 시리아를 건너 예루살렘까지 가야 한다는 비전을 주셨습니다. 당시 그들은 예루살렘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그 팀을 이끌었던 마아마크 목사와 자오마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자오마이는 신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본명이 있었는데 하나님이 마이짜이로 이름을 바꾸라 해서 뜻도 모르고 고쳤습니다. 그런데 신학을 공부하며 하나님으로부터 비전을 받고 보니까  ‘마이짜이’가 이슬람의 창시자 모하메드가 탄생했던 메카의 중국발음인 것을 알았습니다. 거기까지 복음으로 덮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들이 복음을 들고 가기 시작했습니다. 가다가 수없이 강도들을 만나고, 물이 없어 고난당하고, 이웃으로부터 복음전한다고 핍박받는 등 말로 할 수 없는 고난을 당했습니다.

얼마 전 카스에 가서 그때 출발했던 92세의 하은정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이 분은 자오마이짜이의 아내입니다. 남편이 옥고를 치루고 출감되어 카스지역에서 평생 복음전하다 소천하셨습니다. 그 때 하은정사모가 장례식을 집도하며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오히려 섬기러 왔다.”는 말씀을 전하면서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울지 말라고 격려하셨다고 합니다. 그 분에게 41회 선교컨퍼런스가 있다고 말씀드리고 강의할 때 제가 사모님과 목사님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메시지를 전해주시고 사진을 좀 찍어도 되겠습니까? 여쭈었더니 “사진 찍지 마세요. 사진이 뭐가 중요해요. 단지 가서 전하세요. 이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순간적인 감격을 가지고 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순간의 감격이 90년 동안 나를 지켜주지 못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도 92세의 할머니가 주일마다 세 시간씩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 분들을 뵈면서 하나님이 중국교회를 이렇게 축복해 주신 것은 고난당하는 성도들과 1940년대 후반에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선교의 길을 떠났던 믿음의 선조들 때문에 지금 중국교회가 축복을 누리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지금 중국교회로 남아있는 서진선교를 감당할 수 있도록 그들을 축복하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총력전도주일을 한번도 안해도 교회가 불같이 일어나고, 전도지를 들고 길거리에서 전도하지 않아도, 삼자교회는 십자가라도 붙이지만 가정교회는 십자가도 달지 않아 어디에 교회가 있는지도 모르는데도 하나님이 폭발적인 부흥을 주셨고, 그들에게 사명을 감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카스에 갔을 때 서북영공단 사역자들이 묻혀있는 공동묘지에 갔습니다. 1946년에 “예루살렘으로 가라”는 비전을 받고 복음을 전하며 여기까지 와서 사역하다가 묻혀있다는 묘지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 묘비도 없는 초라한 무덤들, 그리고 어떤 묘에는 나무판자로 그냥 꽂아 놓은 묘비에 ‘천국대사 장미영’이라 쓰여 있었습니다. 이 분은 93세에 소천 하셨는데 평생 결혼하지 않고 미혼으로 복음전하며 사시다 그 곳에 묻혔습니다. 서북영공단에서 활동했던 티엔페이진 목사님의 묘에도 묘비가 없습니다. 그 분의 사모가 2001년에 소천 하셨는데 나무로 된 묘비에 ‘기독사녀’ 즉 그리스도의 종이라 쓰여 있습니다. 장수경 묘비에는 ‘예수기독정병’, 예수그리스도의 군사라는 뜻입니다. 너무나 허술하고 초라한 무덤들을 보며 시멘트 묘비라도 해서 후대들이 그들의 신앙을 기억할 수 있도록 돌볼 수 있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중국교회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는데 너무 외진 지역이라 관심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분들이 카스에 처음 도착해 예배를 드렸던 교회를 갔습니다. 지금도 거기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는데 그 예배당이 곧 팔린다고 들었습니다. 팔리면 십중팔구 그 건물은 철거될 것이고 또 다른 건물이 들어설 것입니다. 이런 예배당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계속 예배할 수 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저희 선교회가 중국에서 하고 있는 신학교 졸업식 때였습니다. 사회를 보던 목사님이 갑자기 펑펑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우리 모두 영문도 모르고 따라서 같이 울었습니다. 사회자가 울면서 “제가 한분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80년 이후에 태어난 우리는 책으로만 배웠던 서북영공단의 이야기, 오늘 이 자리에 졸업하는 여러분을 축하하기 위해 한분이 오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분이 나오시더니 “우리가 가지 못한 길 여러분들이 가십시오.”라고 한 마디 하셨습니다. 중국교회는 서진선교가 가슴에 한처럼 맺혀있습니다. 중국목사님이 제게 “서진선교에 대해서 우리도 한국사람의 한처럼 가슴에 한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진선교 해야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중국교회를 하나님이 어떻게 축복하지 않겠습니까?

1974년 제1차 로잔선교대회 때 중국대표가 79명 참석했습니다. 이분들은 중국본토에서 가신 분들이 아니고 해외에서 가신 분들입니다. 그리고 1989년에 마닐라에서 제2차 로잔대회때 제일 앞자리 200석을 중국교회의 몫으로 남겨두었습니다. 그런데 중국 정부에서 나가지 못하게 하여 200석이 그냥 공석으로 비어 있었습니다. 2010년 10월 남아공에서 제3차 세계로잔선교대회를 합니다. 놀랍게도 주최 측에서 중국교회에 250석의 좌석을 배정하였습니다. 미국교회가 600석으로 가장 많고 다음이 중국교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중국교회가 어리고 도움이 필요한 교회로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세계교회가 중국교회에 250석의 좌석을 배정한 것입니다. 이것은 인구가 많아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앞으로 10년, 15년, 20년 후, 세계선교를 중국이 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좌석을 중국교회가 얼마나 감사로 받았는지 아십니까? 로잔선교대회를 주최하는 사람들이 중국교회에 배정한 250명의 경비를 어떻게 조달할까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로잔준비위원회에 중국대표로 참석한 분에게 주최 측에서 “우리가 얼마나 도우면 좋을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중국대표가 뭐라고 한 줄 아십니까?

“성경에서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중국교회의 경비는 저희 스스로 감당하겠습니다. 그 뿐 아니라 우리 주변의 가난한 나라의 참석자들 경비까지도 우리가 충당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비용이 자그마치 150만불(18억)이 됩니다. 그 때까지 미국교회와 중국교회만 자비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소식을 듣고 중국교회와 성도들이 “이제 우리도 세계교회를 향하여서 서진선교를 감당하는 교회임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구나...”라며 얼마나 큰 자부심을 갖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얼마 있다가 이 사실을 알게 된 인도교회가 경비를 스스로 부담하겠다고 했습니다. 스리랑카도 자신들의 경비를 스스로 부담하겠다고 했습니다. 2010년 로잔 세계선교대회는 많은 사람들이 중국교회가 성인식을 하는 특별한 대회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어리고 약한 교회였던 중국교회가 성인으로 거듭나 세계선교를 주도해 가며 서진선교를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교회가 아무리 헌금을 많이 하고 향후 세계 선교를 감당할 것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고난 중에 있습니다. 이것으로 교회에 아픔이 많습니다. 위로가 필요한 교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한국교회가 아파하는 중국교회를 위로하라고 이 자리에 불러주셨습니다. 평양에서 예루살렘까지 고난 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로하고 복음전하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이삭목사님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고, 현장선교사들만 해서 될 일도 아닙니다. 바로 여러분들이 함께 협력하고 기도해주셔야 이룰 수 있습니다. 중국교회는 지난 60년 동안 핍박을 견디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온 신앙의 거장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중국정부의 집요한 핍박과 방해를 받으며 믿음의 경주에 힘을 다하는 교회와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들 모두 한국교회와 우리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이들을 위해 함께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모퉁이돌선교회 현장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