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예언적 말씀을 듣게 되면, 구체적으로 순종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반드시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한다. 기도가 왜 중요한가?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세상에 복음을 전할 계획을 세우다 보면 이 일이 혼자서 실천할 수 없는 중대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예수님도 기도하시기 위해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셨다. 누가복음 6장 12절을 보면 예수님은 밤이 새도록 기도하신 다음날 능력을 베푸셨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예수께서는 그들도 고쳐 주셨다. 이렇게 예수에게서 기적의 힘이 나와 누구든지 다 낫는 것을 보고는…”(누가복음 6:17-19). 예수님의 능력은 기도에서 나왔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 안타깝게도 이처럼 기도하는 시간을 계획하지 않는다. 우리는 마치 예수님보다 능력이 많은 양 곧바로 사역에 돌진한다. 그러다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뿐 아니라 그분이 맡기신 사역마저 위태롭게 만들 뿐이다.
중보 기도와 대적 기도
여러 가지 기도 가운데서 우리는 종종 두 가지를 간과한다. 그것은 중보 기도와 대적 기도이다. 우리는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세계 곳곳의 사람들을 위해 중보 기도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전하든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전하든,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을 준비시켜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 나라의 교회를 위해 중보기도해야 한다. 특히 신앙 때문에 박해받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또한 일상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도록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한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다른 한 가지 기도는 대적 기도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저항하는 세력을 대적하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 우리가 박해 받는 교회를 섬기고 접근 제한 국가에 주님의 복음을 전하고자 한다면 많은 장애에 부딪힐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그 장애를 없애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이 대적 기도에 물렁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나님께 교회에 복 주시고 우리에게 복 주시고 선교사에게 복 주십시오, 하고 간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악과 악인들을 대적하는 기도를 배워야만 한다! 악한 사람들은 우리가 참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막는 활동을 하거나,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 예배를 가로채고 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 3장 2절에서 “또한 우리가 심술궂고 악한 자들로부터 구출 받게 해주시기를 기도하십시오. 사람마다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했다. 우리는 어떻게 심술궂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구출 받을 수 있을까? 만약 그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다면 해결책은 하나밖에 없다. 그들을 사라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노파심에 말을 덧붙이자면 그들이 죽도록 기도하라는 것이 아니라 영향력이 사라지도록 기도하라는 뜻이다.
에드 실보소가 악의 견고한 진을 파하는 기도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그는 “견고한 진이란 하나님의 뜻에 대항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여 무력감에 빠진 정신 상태”라고 정의했다. 견고한 진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가만히 앉아 모든 상황을 하나님의 뜻으로 치부하지 말고 담대히 기도해야 한다.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과 권세와 상황들이 활발히 하나님의 뜻을 훼방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기도로 싸우는 군인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악을 무찌르기 위해서는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한다. 피땀과 눈물로 싸워야 한다.
이슬람 국가든 공산주의 국가든 어느 나라가 되었건 거기서 박해받고 있는 성도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보좌를 흔드는 기도, 그리고 하나님이 부르시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갈 준비를 하면서 내가 사는 세상에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려는 기도, 그런 기도가 필요하다.
브라더 앤드류 (오픈도어선교회 설립자)
한국오픈도어선교회 제공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예수님도 기도하시기 위해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셨다. 누가복음 6장 12절을 보면 예수님은 밤이 새도록 기도하신 다음날 능력을 베푸셨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예수께서는 그들도 고쳐 주셨다. 이렇게 예수에게서 기적의 힘이 나와 누구든지 다 낫는 것을 보고는…”(누가복음 6:17-19). 예수님의 능력은 기도에서 나왔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 안타깝게도 이처럼 기도하는 시간을 계획하지 않는다. 우리는 마치 예수님보다 능력이 많은 양 곧바로 사역에 돌진한다. 그러다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뿐 아니라 그분이 맡기신 사역마저 위태롭게 만들 뿐이다.
중보 기도와 대적 기도
여러 가지 기도 가운데서 우리는 종종 두 가지를 간과한다. 그것은 중보 기도와 대적 기도이다. 우리는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세계 곳곳의 사람들을 위해 중보 기도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전하든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전하든,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을 준비시켜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 나라의 교회를 위해 중보기도해야 한다. 특히 신앙 때문에 박해받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또한 일상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도록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한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다른 한 가지 기도는 대적 기도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저항하는 세력을 대적하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 우리가 박해 받는 교회를 섬기고 접근 제한 국가에 주님의 복음을 전하고자 한다면 많은 장애에 부딪힐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그 장애를 없애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이 대적 기도에 물렁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나님께 교회에 복 주시고 우리에게 복 주시고 선교사에게 복 주십시오, 하고 간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악과 악인들을 대적하는 기도를 배워야만 한다! 악한 사람들은 우리가 참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막는 활동을 하거나,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 예배를 가로채고 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 3장 2절에서 “또한 우리가 심술궂고 악한 자들로부터 구출 받게 해주시기를 기도하십시오. 사람마다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했다. 우리는 어떻게 심술궂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구출 받을 수 있을까? 만약 그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다면 해결책은 하나밖에 없다. 그들을 사라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노파심에 말을 덧붙이자면 그들이 죽도록 기도하라는 것이 아니라 영향력이 사라지도록 기도하라는 뜻이다.
에드 실보소가 악의 견고한 진을 파하는 기도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그는 “견고한 진이란 하나님의 뜻에 대항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여 무력감에 빠진 정신 상태”라고 정의했다. 견고한 진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가만히 앉아 모든 상황을 하나님의 뜻으로 치부하지 말고 담대히 기도해야 한다.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과 권세와 상황들이 활발히 하나님의 뜻을 훼방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기도로 싸우는 군인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악을 무찌르기 위해서는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한다. 피땀과 눈물로 싸워야 한다.
이슬람 국가든 공산주의 국가든 어느 나라가 되었건 거기서 박해받고 있는 성도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보좌를 흔드는 기도, 그리고 하나님이 부르시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갈 준비를 하면서 내가 사는 세상에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려는 기도, 그런 기도가 필요하다.
브라더 앤드류 (오픈도어선교회 설립자)
한국오픈도어선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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