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무섭지도 않니?”

할머니가 했던 그 말은 우리가 매일 쳐다보는 그런 하늘이 아니었습니다. 비가 내리고 구름이 끼고 천둥이 치는 그런 하늘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셔!’라는 말이었습니다. 하늘이 무섭지도 않느냐는 말을 어린 시절부터 듣고 자라온 소녀는 이제 중년의 여인이 되어 압록강을 건너왔습니다. 그러다 여인은 조선족들을 만나고 선교사를 만났습니다.

그 할머니가 하셨던 “하늘이 무섭지도 않느냐?”던 말이 기억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의 하셨던 말씀과 행동들을 떠올려 봤습니다. 할머니는 분명 예수쟁이였습니다. 그 할머니가 이제는 이 땅에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그 하늘에서 주님의 품에 안겨 안식하십니다.

“나도 가야해! 나도 가야해!”

이 말을 하는 탈북성도의 진심어린 말과 함께 흘러내리는 눈물…. 우리에게 이런 간절함이 있는 것일까요? 아니 우리는 주님을 얼마나 아는 걸까요? 중국에서 만난 한족예수쟁이들의 간절함이나 구소련에서 만난 기독교인들이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나 탈북 성도들의 몸부림치는 기도와 찬송소리를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까?

아니 우리 어머니들이 가졌던 그 헌신과 뜨거운 사랑의 모습을 우리는 왜 닮지 못하는 걸까요?

“걱정이외다!”
“뭐가요?”
“성경이 들어오고 교회가 정부로부터 허락받는 것은 좋은 일이오만…돈, 돈, 돈 하는 세상이 되고 배가 불러도 여전히 주님을 찾을런지….”

1983년 만주로의 첫 여행, 그리고 1985년에 모퉁이돌선교회가 시작되어 성경을 배달하면서 만난 한 조선족 노인의 걱정 어린 한마디입니다.

오랜 세월을 공산치하에서 살아왔던 노인은 앞으로 오는 세대가 염려스러웠습니다. 당시 젊었던 저는 그 노인의 말을 무심히 넘겼습니다. 10년이 지난 후에야 노인의 말이 옳았음을 깨달았습니다. 중국경제가 성장하는 중에도 믿음이 여전히 순수할 수 있을까? 하던 염려는 현실이 되어 버렸습니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말은 바울과 디모데에게만 해당되는 걸까요? 성경이 2천 년 이전의 것이고 우리와는 상관이 없는 것일까요? 세상은 변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여전히 살아 있는데, 왜 사람들은 옛날 고서로서만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수준으로 끌어내리기 일쑤이고, 아니면 자기가 주인이 되어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요술쟁이를 부리는 정도로 생각합니다.

“하늘이 무섭지도 않니?”라고 물으셨던 할머니는 작은 음성으로 “심판이 있어~”라고 말하곤 하셨다고 합니다.

심판대에 올려 질 우리. 우리의 모든 것을 직고할 그 날에 과연 하나님을 어떻게 대면할 것인지를 생각하신 것입니다. 아니 그 날에는 이미 늦습니다. 그 날 이후로는 어린양 예수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은혜가 없습니다. 다만 심판이 있을 뿐입니다.

두렵지 않습니까?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약속하신 말씀이 이루어져 왔고, 앞으로 그 말씀들이 다 이루어질 것입니다. 주님은 약속하신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 날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우리는 하나님을 기뻐하며 찬양할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진 성도가 북한 땅에 살아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그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전해야 합니다. 이것은 명령이며 우리는 순종할 뿐입니다.

마라나타! 주님 어서 오시옵소서!

무익한 종 이삭

모퉁이돌선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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