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w1.jpg풀러신학교에서의 교수사역

랄프 윈터는 TEE 사역을 비롯한 선교사역에 관한 글들을 전략적으로 정립하여 선교잡지에 기고하였다. 윈터의 신학연장교육제도에 감명을 받은 풀러신학교 선교대학원의 도날드 맥가브란(Donald A. McGavran) 박사는 자기가 함께 일하고 있던 유명한 인류학자 알란 티펫(Alan Tippett)과 함께 일하자고 풀러신학교에 초청하였다.

윈터는 1966년부터 1976년까지 풀러신학교에서 교수사역을 하는 기간 동안 1천여 명의 선교사들을 가르쳤는데, 자기 학생들로부터 그는 세계선교현장을 배웠다고 말하였다. 풀러에서 약 1천여 명의 제자들로부터 선교현장 보고들을 접하면서 그는 전통적인 선교전략에는 독특한 패턴이 반복되는 것을 깨달았다.

풀러에 온 학생들 가운데 미접촉 족속들 가운데 사역하다가 온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음을 알게 된 윈터는 선교의 미개척지가 존재하는 사실과 전통적인 선교는 미접촉 족속 지역을 배제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는 교회가 없는 미접촉 지역에 살고 있는 인간집단들과 문화집단들을 새롭게 발견하면서 그들을 어떻게 복음화 할 것인가 하는 고민에 빠지기 시작하였다. 자신이 이렇게 풀러에서 100년을 가르친다 해도 미접촉 족속들 가운데 사역하는 선교사가 선교대학원에 찾아올 까닭이 없다는 생각이 분명해지자 그는 선교하는 교회는 교회가 없는 곳으로 언어와 문화적 장벽을 넘어가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바로 이 때 그가 윌리엄 케리 출판사(William Carey Library)를 세워 선교자료들을 출판하여 보급하였고, 미국선교학회도 공동 설립하였으며, 지금의 퍼스펙티브 공부 프로그램(초기에는 국제학여름연구소, Summer Institute of International Studies로 불림)을 세웠고,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1974년 로잔대회 때 ‘미접촉 족속’(unreached people)과 동의어로 후에 불린 ‘감추인 족속들’(hidden peoples) 개념을 제시하였다.

1974년 세계 복음화를 위한 대회와 윈터의 사역방향 전환

미국인 전도자 빌리 그레이엄이 조직한 행사로서 스위스 로잔에서 1974년에 열린 세계 복음화를 위한 대회(The Congress for World Evangelization)에서 발표한 윈터 박사의 글은 세계선교를 위한 획기적인 것이었다. 로잔 세계 복음화 대회에는 여러 명의 풀러 교수가 참여하였고, 윈터는 토요일 오전 시간에 ‘타문화 복음 전도: 최우선 순위’라는 제목의 기조 강연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강연을 하기 위해 연단에 선 윈터는 열흘 동안 계속된 집회로 피곤을 느낀 사람들이 강당을 빠져나간 바람에 강당이 절반정도 밖에 차지 않은 것을 보고 참석자들 가운데 과연 몇 사람이나 자신의 타문화 복음 전도에 관한 내용을 이해할 것인지 반신반의하였다. 그러나 반응은 뜨거웠다. 그의 강연은 선교대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에게 집회의 ‘분수령’이 되었다.

그 결과 미국에서는 새로운 미접촉 족속 선교운동이 일어났고, 세계 각국에서 미접촉 족속 복음화 운동이 일기 시작하였다. 윈터의 강의 핵심은 세계 복음화의 남은 과업을 찾아내고 사람들에게 미접촉 족속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며 많은 사람을 동원하여 남은 과업을 완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남은 과업을 완수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동원사역임을 강조하였다.

그는 그의 강의를 통하여 정치적 경계에 집중하던 세계선교전략을 독특한 종족에 초점을 맞추는 전략으로 바꾸어 놓았다. 윈터는 나라들에 집중하기보다 선교단체들로 하여금 아직 복음에 접촉되지 않고 있는 세계의 수많은 종족들에 집중할 것을 주장하였다.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은 “랄프 윈터는 세계의 많은 선교회들 가운데 전도를 증진시켰을 뿐 아니라 그의 연구, 훈련, 그리고 출판을 통하여 세계복음화를 촉진시켰다”고 기록하였다.

세계선교를 위한 미국본부(US Center for World Mission) 설립

로잔 대회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온 윈터 부부는 하나님이 자신들을 새로운 길로 인도하고 계시는 것을 느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해외선교부나 풀러 선교대학원이 제공하는 안정적인 후원이 전혀 없는 길로 인도하셨다. 풀러 선교대학원에서 북동쪽으로 4.8km 떨어진 곳의 대학 캠퍼스가 매물로 시장에 나왔다.

1910년부터 대학교 캠퍼스로 사용되던 나사렛대학교가 샌디에이고로 캠퍼스를 옮기면서 팔게 된 것이다. 건물들이 워낙 낡아서 사려는 사람들이 없었지만 그 캠퍼스를 구입하여 세계선교를 위한 미국 센터와 윌리엄케리국제대학교로 사용하게 되었다. 윈터가 풀러 선교대학원 교수로 사역하고 있는 1973년, 그는 3년마다 열리는 어바나 선교대회에서 수많은 학생들이 선교헌신을 하는데 그들을 위한 선교교육을 선교의 성경적 관점, 역사적 관점, 문화적 관점, 그리고 전략적 관점에서 가르치는 강좌를 개설하는 것을 생각하던 중에 ‘미션 퍼스펙티브’(Mission Perspectives)를 개발하였다. 북미주에서 적어도 8만여 명이 이 과정을 이수하였다.

여러 단체 조직을 통한 영향력 확대

1976년부터 윈터는 윌리엄케리국제대학교(William Carey International University, 1977), 국제개척선교학회(International Society for Frontier Missiology, 1986), 그리고 질병원인연구소(Institute for the Study of the Origin of Disease, 1999)를 포함한 여러 기관들을 설립하였다. 그의 생애 마지막 해에 윈터는 2010년 5월에 열린 동경 2010년 세계선교회의(Tokyo 2010 Global Mission Consultation)의 조직을 도왔다. 동경 2010은 세계 각처에서 1천여 명의 선교 지도자들이 모여 세계에서 가장 복음화가 덜된 민족들을 복음화하기 위한 미완성 임무를 의논하기 위하여 모인 모임이었다.

죽음

윈터는 2009년 5월 20일 84세의 나이에 여러 공수종(multiple myeloma)과 임파종(lymphoma)으로 죽음을 맞게 되었다. 그는 부인 로버타 헬름 사이에 네 명의 딸을 두었고, 로버타가 죽은 후 친구의 부인이었던 바바라 스캇치머(Barbara Scotchmer)와 재혼하여 죽을 때까지 함께 살았다. 아내 로버타를 잃고 평생 혼자 생활해본 적이 없는 윈터는 반려자가 절실히 필요로 하였고, 자신의 처지를 후원자들에게 솔직하게 알렸다. 재혼에 대한 조언을 구하다가 바바라의 결혼 제안을 좋게 여기고 전화와 편지로 의견 교환을 하였으며, 네 딸들의 동의를 얻어 다음해 1월 바바라와 연애를 시작했고 2002년 7월 6일 결혼식을 올렸다.

삶의 모토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없거나 하지 않을 일들이 있다면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과 하게 될 일은 결코 어떤 일도 하지 말라.”(Never do anything others can do or will do, when there are things to be done that others cant's do or won't.)-도슨 트로트맨(Dawson Trotman)의 영향을 받아 삶의 모토로 삼았다.

“모험은 성공의 개연성으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목표의 가치로 평가되어야 한다.”(Risk is not to be evaluated in terms of the probability of success but by the value of the goal.)

“매일 일어나지 않는 어떤 일이 당신의 삶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다.”(Nothing that does not occur daily will ever dominate your life.)

“누가 공로를 인정받던지 상관하지 않는다면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You can get a lot done if you don't care who gets the credit.)

윈터는 한 마디로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박식했고 수많은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살았다. 그는 전시적인 생활습관을 유지하며 살았다.(끝)

PKH_eded3.jpg박기호 교수는 총신대학교 기독교 철학과(B.A. Equiv.)와 신학대학원(M.Div. Equiv.), 아시아연합신학연구원(Th.M.), 풀러신학교 선교대학원(M.A./Ph.D.)을 졸업하였다. GMS 소속 필리핀 선교사(1981~1996)로 사역하였고, 풀러신학교 선교대학원 아시아 선교학 교수 겸 한국학부 원장(1996~현재)으로 재직 중이다.

또한 동서선교연구개발원장(2004~현재), 아시아선교학회 설립회장/명예회장(2003~현재), 아시아선교협의회 수석회장(2010~현재), Asian Missions Advance 편집장(2011~현재)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