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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의 북한’ 투르크메니스탄, 이슬람 성향의 독립 민주주의 내세워 교회 핍박

[오픈도어] 투르크메니스탄의 박해상황

기사입력 :2017-01-24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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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4.jpg투르크메니스탄을 이해하는 핵심 요소들

투르크메니스탄은 중앙아시아에서 유일한 독재국가로 지도자에 대한 개인숭배가 강하다. 이런 점 때문에 중앙아시아의 북한으로 불리는 것은 낯설지가 않다. 2006년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Saparmurat Niyazov) 전 대통령 서거 시까지 그의 어록집인 ‘루흐나마(Ruhnama)’에 의하면, 이 나라는 마치 또 하나의 종교처럼 그에 대한 숭배로 가득했다. 그의 책과 철학이 공적 생활을 지배했고 학교와 대학에서 그 책에 관한 교육이 진행되었다. 이러한 숭배의 절정을 이룬 것은 아마도 수도 아시가바트(Ashgabat)에 세워진 금으로 칠한 회전하는 대통령 조각상일 것이다. 2006년 12월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Gurbanguly Berdymukhamedov)가 그의 뒤를 이어 취임하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도 니야조프의 전철을 밟았다. 교사와 공무원들은 대통령에 관한 다섯 권의 책을 집필했고, 학생들은 학년의 70~80일 동안 국가가 지원하는 대통령 퍼레이드에 참여하도록 강요받았다.

정부당국은 수도 아시가바트(Ashgabat)를 재건해서 하얀 대리석 도시로 바꾸기로 했다. 수천 가구가 사는 옛 구역이 그 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 없이 허물어졌다. 물 부족이 심각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넓은 도로와 거대한 분수, 인공 폭포가 건설되었고 조각상과 광고판이 그 현장을 다 차지하고 있는데 모두 대통령을 기리는 내용들이다. 2015년 5월 25일, 정부는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함메도프 대통령이 비둘기를 안은 채 말을 타고 있는 거대한 조각상의 제막식을 거행하였는데 이 조각상은 모두 24캐럿 순금으로 도금되었다. 새로운 개인숭배가 시작된 것이다.

t5.jpg정치와 입법
투르크메니스탄은 중앙아시아에서 국가통제를 가장 높은 수준으로 받는 나라다. 미 국무부 보도에 따르면, 정부당국은 등록조건에 대한 종교적 자유 제한, 종교 간행물의 제작과 보급 시 엄격한 규제 및 단체와 개인의 종교활동에 제한을 가하는 법과 정책을 도입해왔다.

모든 종교기관은 합법적인 운영을 위해 법률에 따라 법무부에 등록해야 한다. 기관이 등록하기 위해서는 규정에 따라 연락처, 주소지 증명, 헌장과 약 400마나트(114달러)에 해당하는 등록비를 제출해야 한다. 등록된 종교 단체는 법정 연령의 구성원이 5명이상 50명 미만인 경우와 최소 50명으로 구성된 단체, 이렇게 두 가지 법적 범주로 나누어져 있다. 종교 단체나 기관이 헌장에 서술되지 않은 활동을 수행 시 부과되는 벌금에 대해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미등록한 종교단체들은 예배 설립 장소를 비롯해서 모임, 종교 서적 제작 또는 보급이나 개종을 포함한 어떠한 종교 활동도 법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 그러한 활동은 행정 범죄로 처벌되며 벌금은 500~1,000마나트(143~286달러) 범위 내에서 부과된다.

종교법에 의하면 성직자를 제외하고 공공장소에서 종교적인 복장 착용은 금지되며, ‘종교적인, 국가적인, 민족적인 또는 인종간의 증오’를 선동하는 종교 간행물에 대한 국내출판도 금지다. 수입 종교 간행물은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등록된 단체만 간행물을 수입할 수 있는데, 당국의 승인 없이 종교 서적을 출판하거나 보급할 경우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경제
정치와 마찬가지로, 국가는 경제 역시 통제하려고 한다. 적어도 12개의 국내은행 중 8개는 정부소유이며, 어떤 부채를 갚을 것인지는 정부가 결정한다. 이 나라를 조사한 한 연구자는 “이 나라는 대통령을 위한 정부 소유의 오락도구이다”라고 평가했다.

천연가스와 다른 원자재의 풍부함에 기인한 잠재적인 경제성장 요인에도 불구하고, 오직 극소수의 상위층만이 그 이득을 가진다. 실업률과 가난은 매우 높은 수준이며 GDP의 상승에도 불구하고 모든 시민의 수준은 향상되지 않았다. 2014년 이래로 기름값의 큰 하락은 투르크메니스탄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왔고, 수도 아슈하바트의 계획된 재건축들이 연기되어야만 했다.

t6.jpg사회와 문화
투르크메니스탄은 실업률이 매우 높다. CIA 국제보고서에 따르면, 실업률은 2014년 60%이다. 불행히도 그 이후로도 거의 떨어지지 않고 있다. 부정부패가 행정과 정부의 모든 분야에서 고질적이다. 무슬림 배경의 신자들(MBBs)은 가족, 친구, 지역 공동체와 같은 사회적 요인들로부터 많은 압력을 경험한다. 이러한 핍박은 주요 도시들보다는 시골에서 더 강하다. 구소련의 교육정책덕분에, 투르크메니스탄의 모든 시민들을 글자를 쓰고 읽는다. 이것은 기독교 메시지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자국어로 된 자료들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에 의해 강요된 제약들로 인해 대부분의 유통은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투르크메니스탄은 인권에 대해 좋지 않은 평판을 가지고 있다. 감옥과 노동수용소가 있는데, 그곳은 지속적인 수용초과의 상태이며 환경은 열악하다. 문자적으로 수천 명이 이곳에 잡혀있다. 잘 알려진 것은 세디 노동수용소(the Seydi labor camp)이다. 매년 사면의 날이면, 수백 명의 죄수가 풀려난다. 이 나라는 여행자들을 검문하는 많은 도로검문소가 있다. 활동적인 목사들에게는 정규적으로 여행이 금지되고 활동이 정지된다. 예를 들어 일무라드 누르리데브(Ilmurad Nurliev)는 이 일로 감옥에 가기도 하였다. 이러한 처벌들이 외부로 여행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기술
가장 최근의 자료에 따르면, 인구의 5% 이하만이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다. 수도 아슈바다트에는 몇 개의 인터넷 카페들이 있지만 인터넷 사용자들은 대부분의 국제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정부는 인터넷 접속에 있어서 독점적이며 이메일을 감시하고 의심스러운 글들은 막아버리는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외국의 기독교 사이트는 차단되어 있다. 접속속도는 느려서 사용자들이 다운로드하는 것을 힘겹게 만든다.

휴대폰 서비스는 가능하며 보고된 것으로 3백 5십만 개의 전화기가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2010년 말 러시아 업자의 사업허가 보류 이후, 2백 5십만 시민이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

방송 매체는 정부가 통제하고 있다. 7개의 정부 소유의 TV방송국과 4개의 정부 소유 라디오방송이 있다. 비록 인공위성방송이 정부 주도적 방송을 대체하는 프로그램을 보내지만, 때때로 위성수신체(satellite dishes)를 옮겨버림으로써 위성방송수신에 제한을 건다. 검열의 수준이 어떠한지는 이 사건을 통해 분명해진다. 2013년 대통령이 말경주에 참가하였는데 수천 명의 관중이 보는 데에서 낙상하였다. 국내 매체는 성공적으로 막았지만, 국제 매체들은 이 사건을 보도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모든 노력을 다해 그들을 침묵시켰다. 이것은 대통령이 원하는 통치를 구사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부주도의 방송을 대체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위성방송뿐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정부의 검열에서 벗어난 프로그램들을 시청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러나 때때로 정부는 캠페인을 벌여서 위성수신체를 건물에서 제거하려고 한다. 그래서 많은 돈을 들여 위성방송을 위한 시설을 설치하더라도 어느 순간에 옮겨질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항상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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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 가운데 안전한 곳으로 이전하여 기도로 사는 여인.사진=오픈도어
투르크메니스탄 교회의 실상과 역사

문서에 따르면, 4세기 투르크메니스탄을 비롯해 중앙아시아에 들어온 최초의 기독교인은 네스토리우스(Nestorian) 교파 선교사들이었다. 5세기 이후부터 아시아와 유럽으로부터 수많은 사람의 대이동이 있었다.

투르크메니스탄의 뜻은 투르크멘(Turkmen)의 조상격인 오구스(Oghuz)로 불리던 튀르크어(Turkic)족이 동아시아로부터 건너온 것을 의미한다. 8세기부터 옛 실크 무역로를 따라 이슬람교가 들어왔으며, 네스토리우스교파 기독교인들은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16세기 투르크메니스탄은 히바(Khiva) 지방의 우즈벡 칸국(Uzbek khanates)과 부하라(Bukhara)의 문화와 종교에 깊은 영향을 받게 되면서 두 공화국의 일부가 되었다.
오늘날 투르크메니스탄의 기독교는 19세기부터로 추정된다. 1867년 러시아 제국은 수많은 군사 작전 중 중앙아시아로 그 영토를 확장해 나갔고, 히바칸국과 부하라 두 공화국이 패망하게 된다. 러시아 정교회(Russian Orthodox Church)에 소속된 러시아인들이 대부분 정권을 차지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이오시프 스탈린(Joseph Stalin)은 수많은 독일인, 우크라이나인, 폴란드인, 한인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추방시키도록 했다. 그 이주민들과 더불어 다른 교파의 기독교가 투르크메니스탄으로 유입되었다.

t3.jpg전 소비에트 공화국(Soviet Republics)의 국가들처럼 투르크메니스탄 역시 1991년 독립했다. 독립 후 초대 지도자는 공산당 최고의장으로써 투르크메니스탄을 지휘했었던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Saparmurat Niyazov)였다. 니야조프는 사회 전반에 걸쳐 개인우상화를 형성해 강화된 독특한 독립 민족주의(이슬람 성향을 띰)를 내세워 공산주의 체제로부터 대체시켜 나갔다.

해외 이주민 교회 공동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교회 공동체로 가장 큰 기독교 공동체이자 최대교파가 러시아 정교회(Russian Orthodox Church)로 신도가 약 8만5,000명이다. 해당 수치는 전체 기독교인의 90%에 해당된다. 하지만 러시아 정교회는 신도들의 계속되는 해외 이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훨씬 적지만, 로마 가톨릭 교회(Roman Catholic Church)도 있으며, 인원은 약 1,000명가량 된다. 무슬림 배경의 신자 공동체(MBBs)는 약 1,000명 가까이 되며, 전체 인구의 0.01%이다. 투르크메니스탄의 토착교회는 매우 젊지만 성장이 더디다. 이들은 가족, 친구, 지역 공동체, 특히 시골 지역의 공동체일수록 많은 핍박을 겪는다. 신-개신교(neo-Protestant) 공동체는 위에 언급된 역사적인 교회 공동체보다도 훨씬 적다. 신-개신교 공동체의 성도는 약 4,000명가량이며, 침례교(Baptists), 복음주의 계열(Evangelicals), 오순절교(Pentecostals), 순복음교(Full Gospel) 외에도 여러 교파가 있다.

2010년 발행된 오퍼레이션 월드(Operation World) 자료에 의하면, 투르크메니스탄 전체 인구의 82.1%가 투르크만 족(Tukmen)이며, 그다음이 우즈베크 족 9.4%(Uzbek), 러시아인 2.2%(Russian), 발루치족 1.9%(Baluch), 그 밖에 인종이 4.4%로 나타났다. 또한 동일한 자료에 의한 투르크메니스탄의 종교 분포도는 무슬림 96.1%, 무교 2%, 기독교 1.8%, 그 외 종교가 0.1%로 조사되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은 소수민족에 속하며, 대부분 러시아인이다. 토착교회는 제외하더라도, 투르크메니스탄의 전체 기독교인 수는 거의 변화가 없다.(끝)

오픈도어선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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