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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에서 분출된 저항운동에 얼굴이 있다면 그 얼굴은 칼레드 사이드(Khaled Said, 위 사진)의 얼굴일 것이다.

지난 2010년 6월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의 한 인터넷 카페에서 28세의 이집트인 사업가 사이드는 두 명의 사복경찰에게 끌려 나갔고, 목격자들에 따르면 그 경찰들은 그를 때려 죽였다고 한다. 인권운동가들은 사이드가 경찰 부패에 대한 증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살해되었다고 말했다.

이집트 경찰과 보안당국은 그 무자비함과 정치적 반대세력을 척결하는 행태로 악명 높다. 그러나 사이드의 경우, 그들은 자기도 모르게 목표물을 잘못 선택한 셈이 되었다.

사이드가 죽은 지 닷새도 안 되어 익명의 한 인권운동가가 ‘우리는 모두 칼레드 사이드입니다’라는 페이스북(Facebook) 사이트를 개설했고, 맞아서 피범벅이 된 사이드의 얼굴을 시체안치소에서 휴대전화로 찍어온 사진을 올렸다. 유투브(YouTube)에 올라간 동영상은 행복하게 미소 짓는 사이드의 얼굴과 시체안치소에서 찍어 온 화면을 대조해가며 보여주었다. 2010년 6월 중순 이 페이스북 사이트를 방문한 사람이 13만 명에 이르렀다.

사이드 사건을 다룬 이 페이스북 사이트는 2011년 민주화 시위가 이집트 전역을 휩쓸고 있을 때 방문자가 47만 3천 명을 돌파하여 이집트에서 가장 방문자가 많은 반체제 페이스북 사이트가 되었다. 이 사이트는 또한 이웃 나라 튀니지의 저항 운동을 이집트에 널리 알리는 역할도 했다.

이집트 저항 운동의 중심지인 수도 카이로(Cairo)에 있는 타흐리르 광장(Tahrir Square)에서의 시위에 동참한 인권 운동가 아메드 지단(Ahmed Zidan)은 이집트의 민주화 운동에는 여러 촉매가 있는데, 그 첫번째는 바로 칼레드 사이드의 죽음이었다고 말했다.

튀니지의 저항운동은 경찰에 모욕당한 과일 노점상 모하메드 부아지지(Mohamed Bouazizi)의 분신자살로 촉발되었다. 그의 극단적인 행동은 시위로 이어졌고, 시위는 휴대전화 영상으로 녹화되어 인터넷에 올라갔고 페이스북을 통해 퍼져나가 결국 알자지라(Al Jazeera)에서 방송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사이드의 죽음은 이집트와 같이 국민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국가에서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라 할 수 있는 페이스북이 특별한 힘을 발휘한 가장 극명한 사례이다.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개설된 페이스북 사이트는 정부의 폭력에 대한 이집트 국민들의 분노와 유대감을 형성시키는 보기 드문 토론의 장을 제공했다.

하버드 대학교(Harvard University)의 인터넷과 사회를 연구하는 버크만 연구 센터(Berkman Center for the Internet and Society)의 질리언 요크(Jillian C. York) 연구원은 칼레드 사이드의 죽음 이전에도 경찰의 고문을 폭로한 블로그와 유투브 동영상은 존재했지만 강력한 공동체는 부재했었던 반면 이번 사이드 사건은 다르다고 말했다.

이제 중동 전역에 대중 봉기를 촉발한 사건들의 소용돌이에서 소셜 미디어 사이트들의 영향을 떼어놓고 생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소셜 미디어 사이트들은 경찰의 폭력과 고문, 그리고 국민들을 기소도 없이 구속할 수 있도록 만든 무바라크(Mubarak) 정권의 비상사태법에 저항하는 인권 운동가들과 일반 시민들을 연결하는 새로운 수단을 제공했다.

페이스북과 유투브는 저항 세력의 조직과 동원에도 길을 열어 주었으며, 세속적 성향의 젊은이들로 하여금 상대적으로 중립적인 경향을 띠면서도 조직화되어 있는 이집트의 야권으로부터 민주화 시위의 주도권을 가져오도록 만들었다.

이집트 정부가 재빨리 네트워크를 폐쇄하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당보다 훨씬 더 탈중앙화된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들이 보여준 강점과 민첩성은 이집트 당국과 미국 정보분석가들을 확실히 놀라게 했다.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수출입 업계에서 일한 칼레드 사이드는 운동가도 아니었고 정치에 관여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사이드가 경찰의 부패 행위를 촬영하였다고 생각한 경찰은 그를 죽였다고 인권 운동가들은 말했다. 그 동영상은 결국 유투브에 공개되었다.

경찰은 사이드의 가족에게 사이드가 약물사건에 연루되어 있었으며 경찰에 구금된 상태에서 마약 봉지를 삼켜 질식해 숨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목격자들은 경찰의 주장을 부인하면서 유투브 동영상을 통해 사이드의 죽음의 실상을 전파했다.

변호사이자 카이로(Cairo)의 아랍 인권정보 네트워크(Arabic Network for Human Rights Information)의 실행 이사인 가말 에이드(Gamal Eid)는 사이드의 사건이 특별한 이유는 사이드가 평범한 시민이었다는 사실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이드는 그저 부패의 증거를 발견하고 공개한 사람일 뿐이며, 사람들이 그에게 일어난 일을 알게 되었고 폭행당한 그의 사진을 보게 되자 크게 분노하였다고 설명했다.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권리가 제한되어 있고 정부가 신문 및 국영 텔레비전을 감시하는 이집트에서 페이스북과 유투브, 트위터(Twitter), 휴대전화는 인권 운동가들에게 소식을 쉽게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고, 그로 인해 사람들이 사이드의 죽음에 대한 자신들의 분노를 표출하고 의견을 교환할 수 있게 되었다고 에이드는 덧붙였다.

타흐리르 광장에 나온 20세의 학생 후다이파 나바위(Hudaifa Nabawi)는 칼레드 사이드의 죽음이 이번 혁명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사이드는 특정한 당파에 속하지도 않았고 잘못한 일도 없었으며, 모든 젊은이들이 직면하고 있는 억압을 생각하도록 한 상징이라고 나바위는 주장했다.
페이스북은 이집트의 인권운동가들이 이용한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이다. 이집트의 페이스북 사용자 수는 500만 명으로, 중동과 북아프리카 국가들 가운데 가장 많은 규모이다.

중동에서 페이스북의 영향력과 중요성은 최근 수년 동안 지속적으로 높아져왔다. 2008년 ‘4월6일 청년 운동(April 6 Youth Movement)’은 페이스북을 통해 마할라 알코브라(Mahalla al-Kobra)의 파업 근로자 사태를 알려 7만 명 이상의 지지자들을 이끌어 냈다.

최근 2년간 ‘4월6일 청년 운동’과 다른 인권 운동가들은 트위터와 유투브의 도움도 받았다. 유투브는 이집트에서 구글(Google)과 페이스북에 이어 방문자가 세 번째로 많은 사이트이다. 인권 운동가들은 이집트 경찰의 고문 및 폭행 장면이 담긴 수십 편의 동영상을 유투브에 업로드했고, 휴대폰을 이용해 동영상을 촬영하고 공유하는 사람들이 증가함에 따라 유투브는 매우 강력한 소셜 미디어 사이트로 변모했다.

2010년 6월 11일, 칼레드 사이드가 찍은 부패 경찰의 약물복용 동영상이 유투브에 올라가자 ‘4월6일 청년 운동’의 회원 한 명이 해당 동영상에 ‘우리는 칼레드입니다. 우리 모두 칼레드가 될 수 있습니다’라는 아랍어 댓글을 남겼다.

이 댓글은 사람들로 하여금 경찰의 폭력과 고문에 저항하고 ‘깡패 경찰’에 저항하도록 촉구했다. 이 동영상의 조회수는 2010년 6월 이래 50만 회를 넘어섰고, 사이드에 대한 랩 음악과 동영상 수십 편이 더 등장했다.

2010년 6월, 익명의 페이스북 사이트 운영자는 사이드의 죽음에 대한 지지 부진한 경찰조사를 정기적으로 업데이트 할 뿐 아니라 알렉산드리아와 카이로에서 가두시위와 침묵시위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는 글을 올리기 시작하였다. 시위는 9개 도시로 확산되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을 역임하고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모하메드 엘바라데이(Mohamed ElBaradei)도 수천 명의 시위대와 함께 알렉산드리아에서 시위에 참여했다.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에서 이루어지던 대화가 거리시위로 변화하였고, 수십만 명이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 온 경찰의 폭력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이집트 검찰은 2010년 7월 초 칼레드 사이드의 죽음에 관련된 경찰관 두 명을 체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사건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2010년 여름 다른 이집트인들도 경찰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이 죽음에 항의하는 시위가 2010년 가을 산발적으로 계속되었고, 튀니지 정권이 전복되자 ‘4월 6일 청년운동’ 페이스북 동호회와 ‘우리는 모두 칼레드 사이드입니다’ 페이스북 사이트가 이집트 시민들에게 2011년 1월 25일 시위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기 시작했다.

소셜 미디어 사이트가 이집트에서 보여주고 있는 강력한 역할에 대해 무바라크 정권이 의식하기 시작했고, 무바라크의 지지자들은 2011년 2월 초 인터넷 접속이 복구되자마자 칼레드 사이드 페이스북 사이트에서 벌어지는 토론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현재 이 페이스북 사이트에는 반정부 지지자들을 맹비난하고 무바라크 대통령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글과 댓글이 많이 있다. 또한 무바라크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시위가 취소되었다는 허위 정보를 퍼뜨리는 글도 올라와 있다.

그러나 시위자들을 단념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시위에 참석하여 가벼운 부상을 입은 32세의 이집트 시민 오마르 고네임(Omar Ghoneim)은 페이스북에 들어가 사람들에게 시위에 참석하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라는 글을 올리는 것은 이미 소용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출처: The New York Times, 2010년 2월 5일, 한국선교연구원(krim.org) 파발마 75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