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jpg팔레스타인 여성 사미라(Samira)는 스물두 살 때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벌써 15년도 넘은 일이다. 그녀는 여전히 자신을 팔레스타인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그녀는 예수님을 영접하기 위해서 자신의 문화를 거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베일을 쓰고, 라마단 이슬람 금식 기간 동안에는 금식을 하고, 얼굴을 땅에 대고 기도하는 일부 이슬람 문화도 지키고 있다.

사미라의 상황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토착 문화를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라, 토착 문화를 변형시키기도 하고 또 동시에 지켜나가기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전 세계의 많은 기독교인들은 이런 식의 ‘상황화(contextualization)’를 경험하지 못했다.

과거 여러 세기 동안의 선교 역사를 돌이켜보면, 선교사들에 의해 전해진 문화 모델이 선교지에 강하게 되살아나 뿌리 깊게 남아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세계 여러 곳의 교회에서 과거 서구 선교사들이 남긴 문화적 유산을 엿볼 수 있다.

19세기 초, 선교사들이 증가하면서, 선교사들이 세운 교회가 자국의 교회를 모델로 할 것이라는 생각은 일반적으로 예상된 것이었다. 선교사들은 거의 비슷한 복제품을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었다. 고딕 양식의 건축물, 예배의 형식, 성직자의 옷, 악기, 찬송과 음악, 의사 결정 과정, 종교회의와 세계관, 감독과 주교가 바로 그 예이다. 선교사들이 선교지에 세운 교회는 그 어떤 창의력도 없이 도입된 것들이다.

다행히, 세계 선교사 운동은 (선교사가) 현지 문화를 존중하지 않았음을 인정했다. 과거에 문화를 도입하면서 일어났던 심각한 악영향은 선교사들에게 회한과 죄책감을 안겨주었고, 상황화를 강력하게 강조하도록 하는 원인이 되었다. 적합한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에 대한 관심은 현대 선교학의 중요한 측면으로 자리 잡았고, 마침내 대다수 선교사들의 사역에서도 그 중요성은 매우 커졌다. 각자의 사역지에서 사미라의 경험을 재현해 보길 원하는 생각은 큰 인기를 얻게 됐다. 오늘날, 사역에 상황화를 하지 않는 선교사들은 동료들로부터 비판 받기 쉽다. 특히 무슬림들을 대상으로 사역하는 선교사들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교회가 새로 세워지는 곳의 문화적 맥락들을 살펴보면, 선교지에서 꾸준하게 일어나고 있는 ‘비상황화(non-contextualization)’라는 이상한 현상이 눈에 띈다. ‘비상황화’는 높은 단계의 상황화를 추구하는 사람의 사역에서도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아프리카 내지 선교회(AIM)의 탄자니아 선교사 폴 태너(Paul Tanner)의 경험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는 탄자니아 무슬림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면서 상황화를 위해 노력했던 경험을 나누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강조했다.

태너 선교사는 상황화된 사역을 일으키고 싶은 열정으로 무슬림에서 개종한 신자들을 대상으로 첫 번째 예배를 드리게 됐다. 예배 장소에는 의자도 없고 카펫이 깔린 거실이었다. 태너 선교사는 신자들에게 신발은 밖에 벗어놓고 오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신자 한 사람이 그에게 와서 의자도 없고, 신발도 벗고 들어와야 해서 불편하다고 말했고 태너 선교사는 그 말에 놀랐다.

태너 선교사는 새신자들이 이슬람과 연관된 것들로부터 스스로를 멀리 떨어뜨려놓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신자들은 이제 자유를 얻었고, 노예처럼 자유가 없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로버트 둘리(Robert Dooley)는 브라질의 원주민 구아라니(Guarani) 부족의 흥미로운 반응을 소개했다. 그는 구아라니 부족 언어로 성경을 이해하기 쉽게 현지의 문화에 맞도록 번역하고 있었다. 예수님이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한다는 비유를 말씀하신 부분을 이야기하면서 둘리 선교사는 낙타 대신 소를 예로 들면 이 사람들도 이해하기 쉬울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틀렸다. 구아라니 말을 번역해주는 동역자가 둘리 선교사에게 와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게 낙타인지 소인지 물었다. 그래서 둘리 선교사가 낙타라고 말했더니 그 동역자는 그에게 자신들이 낙타를 이해 못 할 것 같았냐고 되물었다.

전통적으로 복음이 지역 문화의 맥락에 맞는 형태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언제나 선교사들은 자신의 문화적 틀을 도입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즉, 현지 문화에 대한 둔감한 태도를 바꾸면, 상황화된 교회가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가정이었다. 현지 문화에 대한 선교사들의 선한 태도가 상황화된 교회를 세울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선교사들이 책임을 지고 사역하지 않는 지역에서, 복음의 비상황화 현상의 원인이 되는 배경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종종 제기된다. 현대 선교 동향에서는 타문화에서의 교회와 기독교의 비상황화에 대한 중요한 원인이 한 가지 있다. 바로 개종자들이 개종자의 토착 문화, 또는 개종 이전의 종교체계의 여러 측면을 거부한다는 점이다.

몇 가지 사례에서, 개종자들과 선교사들이 성경적인 것과 단순히 문화적인 것을 확인하고 구별하는데 어려움을 느낀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이해 과정은 종종 선교사들이 예상한 것 이상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상황화 과정, 문화 유형의 보존, 의미의 대체에는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브라질에서 복음은 외국 문화의 요소들과 함께 섞여 강하게 유입된다. 우리가 민족문화적인 것과 복음주의 문화적인 것의 차이점을 알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브라질 교역자들이 세운 교단과 교회에서도 비상황화 현상은 존재한다.

브라질에서 지금까지 상황화에 대한 많은 시도들이 브라질 신자들의 거부 때문에 실패했다. 이슬람에서 개종한 신자들은 스스로가 오래된 풍습, 또는 문화 형식과의 관계에서 위협받는다고 느꼈기 때문에 민족적인 것을 거부했다. 이러한 현상은 외국인에게 속한 것을 차용하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일 때 일어난다. 예배 중 대부분의 경우 기본적으로 오르간이나 피아노를 사용하는데, 대부분의 신자들은 드럼, 탬버린 같은 브라질적인 악기는 교회에서 사용하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신자들은 삼바(samba, 브라질의 춤이자 아프리카에서 유래된 음악 장르, 역주), 움반다(umbanda, 천주교와 정령 숭배가 혼합된 브라질 흑인들의 종교, 역주), 또는 칸돔블레(candomble, 아프리카 노예의 영향을 받아 브라질에서 시작된 종교, 역주)에서 사용됐던 악기를 예배에 도입하려 하는 것이 불경하다고 생각한다. 브라질에 개신교가 정착한 지 1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런 악기들은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

현지인들은 상황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하다. 선교사들은 그들을 고려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선교사들은 때때로 상황화에서 얼마나 멀어져 가고 있는지를 이야기하곤 한다. 시간을 충분히 할애하지도 않고 선교사가 전도하려는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멀리 있는지 묻는 것이다. 어떤 상황화 과정이든 선교사의 자세는 중요하다. 하지만 많은 선교사들이 선교사의 자세만큼 (상황화) 과정과 연관된 사람들을 수용하고 참여시키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잊는다. 그 어떤 선교사도 현지인과 함께하지 않고서는 상황화 과정을 가능하게 할 수 없다.

바바라 번스(Barbara Burns)는 올바른 상황화에서 현지인들의 참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하면서 진정한 상황화는 사역지의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마 29:19), 삶 속에서 자유를 누리고, 주님을 경배하고, 그분께 순종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지인들은 짧은 시간이나마 전통 형식을 사용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얼마간의 저항을 한다. 선교사들은 사역지의 맥락에 맞는 새로운 사역 방향을 기다리면서 인내하며 다음 세대에 투자해야 한다. 복음을 상황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비상황화 현상을 잘 다루는 것도 중요하다. 옛것을 새롭게 적용해 사용하기 전에 선교사는 신앙을 갖게 된 모든 세대를 부지런히 살펴보며 천천히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종종 선교사에게 단순한 것이라도 선교 현지 주민들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것일 수 있다.

논란의 여지에도 불구하고 비상황화 현상은 계속해서 나타날 것이다. 상황화를 진행했을 때, 선교지 현지인들 입장에서는 반발하거나, 저항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선교사들은 상황화를 무리하게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성급하게 결론에 이르는 대신 성경에 기본을 두고, 현지인을 존중하고 복음의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

- 저자는 브라질 침례교 목사이자 아프리카 내지선교회(Africa Inland Mission) 선교사로 아프리카의 미전도 원주민들을 상대로 선교 활동을 벌이고 있다.

한국선교연구원(KriM) 파발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