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jpg최근 북인도로 선교 여행을 갔을 때, 자립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여성들을 만났다. 그들은 각자 자신들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받아들였고, 세례를 받았으며, 적극적으로 기독교 모임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명의 여인만 세례를 받지 않았다. 이 여인은 가족들이 세례를 받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세례를 받은 여인들은 세례를 받지 않은 이 여인을 기독교인으로 여기고 있었다.

힌두 사회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교회와 기독교인이라는 소속감의 상징인 세례에 대한 문제들은 인도에서 수 세기에 걸쳐 논의되어 왔다. 17세기의 로버트 드 노빌리(Robert de Nobili)와 19세기의 알렉산더 더프(Alexander Duff)와 같은 선교사들은 힌두 사회의 상위 카스트(caste, 계층)에게 접근하고자 노력했다. 19세기에는 람 모훈 로이(Ram Mohun Roy, 19세기 인도의 사회 종교 개혁가)와 케슙 찬드라 센(Keshub Chandra Sen, 19세기 인도의 종교 개혁가)과 같은 힌두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세례를 받지 않은 많은 인도인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기도 했다. 만일 힌두교인이 기독교로 개종을 한다면 힌두사회에서 이들은 어떤 신앙을 간직하여야 하는가?

힌두교인을 전도함에 앞서 힌두교와 기독교의 차이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힌두교는 개념과 세계관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이 같은 종교적 체제에서 기독교의 사상을 ‘해석’하여 가르치는 것은 힘든 과제이다.

힌두교의 복잡한 영적 체계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위험성은 있지만, 힌두교에는 기독교의 복음을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는 두 가지의 기본적인 특징이 있다.

첫 번째 특징으로, 힌두교는 종교적 체계라기 보다는 공동체 사회에 가깝다. 힌두교를 정의하는 일반적인 교리나 신앙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힌두교를 특징지을 수 있는 일반적인 형태가 있다면 다르마(Dharma, 불교에서는 ‘법(法)’으로 번역한다, 역주)라고 불리는 윤리적 의무가 있다. 다르마는 모든 힌두교도들에게 적용되는 규칙으로 세상의 질서를 지탱하는 것으로 종종 이해된다. 모든 힌두교인에게는 두 개의 특별한 다르마인 바르나(varna)와 아스라마(asrama)와 하나의 일반적인 다르마인 사다라나(sadharana)가 주어진다.

바르나는 힌두교인이 태어나면서 주어지는 카스트(caste, 계층)으로, 모든 힌두교인은 자신의 카스트에서 성실하게 의무를 다해야 한다. 아스라마는 힌두교인들의 삶의 네 단계로, 학습의 단계(brahmacarya), 가족을 이끌어 나가는 단계(grhastha), 숲에서 지내는 단계(vanaprastha) 그리고 극기의 단계(sanyasa)이다.

바르나와 아스라마는 모든 힌두교인에게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힌두교인은 태어나서부터 자신의 계층(바르나)과 자신이 속한 영적 단계(아스라마)에 따라 의무를 다해야 한다. 즉 모든 힌두교인은 자신의 바르나와 아스라마에 맞는 정체성과 통제를 받는다.

더불어 모든 카스트의 힌두교인들은 전 생에 걸쳐서 행해야 할 보편적 의무(사다라나)가 있다. 힌두교는 삶이 악하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로부터 탈출하는 것이 최종적 선이다. 카스트의 의무에 성실하고 정숙한 삶을 통해 힌두교인은 자신을 더욱 높은 단계로 이끌어 궁극적으로 (악한) 삶에서 탈출하려 노력하는데, 이것이 니르바나(nirvana, 불교에서는 ‘열반’으로 불린다, 역주)이다.

두 번째로는 힌두교는 여러 다른 신들과 영적 방식들을 따르기 때문에 상대주의적이다. 힌두교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신(god)을 섬길 필요가 없다. 모든 종교적 믿음은 힌두교 안에서 존재할 수 있다. 간디(Gandhi, 상단 사진)가 모든 도덕적 종교는 결국 하나의 절대 신(God)을 향한 각기 다른 길일 뿐이라고 했던 것처럼, 힌두교 내에서도 기독교인이 되는 방법이 존재한다. 힌두교의 이러한 특성이 현대의 신(新) 힌두교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와 스와미 비베카난다(Swami Vivekananda)와 같은 이들은 예수를 구원자로 믿는 것에는 어려움이 없으나 그를 유일한 구원자로 확신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힌두교인들 가운데서 진지하게 사역하는 많은 복음 전도자들은 힌두 공동체로부터 떨어져 나온 새로운 기독교 공동체를 만들려는 시도를 줄이고 있다. 카스트 제도에 묶여 있는 힌두교인을 기독교로 이끌려는 시도들이 실패를 거듭하면서 오늘날 많은 선교 전문가들은 힌두 사회와 기독교인들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다.

어떠한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공개적으로 드러냈지만, 또 어떤 이들은 ‘기독교인’이라는 명칭이 자신을 기존의 힌두 사회로부터 분리시키기 때문에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성령의 힘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에는 동의했다.

전도를 할 때에는 힌두교의 세계관과 더불어 이들의 문화와 공동체의 가치와 조화를 이뤄야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원자로 믿고 따를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에 목표를 두어야 한다.

북인도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들은 각기 다른 힌두 사회의 구성 요소들에 맞는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복음의 소식이 점차적으로 이들의 삶과 생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힌두 계층의 정체성을 파악하고, 악한 세상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그들의 분투를 이해하고, 계층에 따라 구분된 선행을 실천하려는 그들의 불굴의 의지를 알아야 한다. 그러나 거기에서 멈춘다면 고질적인 카스트 제도의 병폐와 행위를 통한 구원을 이루려는 인도인들의 신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한 구원과 성화에 이르는 데까지 나가지 못할 것이다.

힌두교인들은 바른 행위와 바른 믿음을 강조하며, 구원을 얻기 위한 바른 행위는 인간의 죄 때문이 아닌 세계 자체가 악하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믿는다. 힌두교는 올바른 지식, 올바른 예배, 그리고 올바른 삶이 만들어 내는 올바른 길을 추구한다.

기독교가 말하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통해 죄로부터 구원을 받는다는 개념은 힌두교도들에게는 새로운 개념이다. 이러한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독교의 개념을 점진적으로 알려주어야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의미 있게 전할 수 있는 곳에서, 성령을 통한 변화가 있기를 기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랄산기마 파추아추(Lalsangima Pachuau) 박사.
인도 북동부의 미조람(Mizoram) 지역 출신
인도 장로교 목사
미국 에즈베리 신학교(Asbury Theological Seminary)에서 역사와 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출처 : Lausanne World Pulse, 한국선교연구원(krim.org) 파발마 71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