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선교통일한국 컨퍼런스
▲태영호 전 공사가 선교통일한국 컨퍼런스에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이지희 기자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31일 "북한 주민 가운데 경제적 자율화를 점점 확대해 나간다면, 어느 한순간 경제적 권리 요구가 정치적 권리 요구로 넘어가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며 "한국은 통일 이후 북한 건설에 대한 가상 시나리오를 공론화하여 특히 북한 핵심층, 엘리트층이 새로운 출로를 눈으로 보고 고민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 전 공사는 노르웨이에서 열린 '2019 오슬로 자유포럼' 참석 후 이날 오전 귀국하자마자 인천국제공항에서 '2019 선교통일한국 컨퍼런스' 장소로 이동해 기조강연을 발표했다. 30일부터 31일까지 켄싱턴호텔 여의도에서 선교통일한국협의회가 주최한 이 컨퍼런스에는 '김정은 시대, 북한의 변화와 한국 기독교의 역할'을 주제로 70여 명의 선교계, 교계 지도자와 통일 전문가가 참석했다.

2019 선교통일한국 컨퍼런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이지희 기자
"완전한 비핵화 전까진 대북 제재 유지해야"

'하노이 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를 주제로 강연한 태 전 공사는 이날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김정은은 북한 내부에서 실추된 위상을 끌어올리는 일이 급선무가 되었다"며 "현실적으로 한동안 회담장에 나오기 어려울 것이나 하반기에는 제재를 풀기 위해 회담장에 꼭 나올 것"으로 전망했다. 4.27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을 하며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에 집착한 김정은이 영변 핵시설만 포기하면 제재가 풀릴 것으로 예상하고 갈마 해안관광지구에 나라 예산을 쏟아부었으나 하노이 회담 결렬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태 전 공사는 "김정은은 갈마반도에 있던 군사기지를 밀어내고 호텔, 펜션 170동과 갈마역까지 건설했다"며 "금강산관광이 재개되면 한국 정부가 5조 원을 투자해 남북동해안선을 연결할 것이고, 5~9월 여름 성수기 때 10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여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계획이 빗나갔다"고 말했다.

하지만 태영호 전 공사는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로 갈 때까지 대북 제재는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그는 "오슬로 자유포럼에서는 기본적으로 북한과 같은 압제정권, 독재정권이 전 세계에 많은데, 북한 특성상 개혁, 개방을 이루고 해외 원조를 받아 정상국가로 갈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며 "북한이 정상국가가 되면 결국 핵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이것이 비핵화로 가는 길이 아니냐고 생각하는데,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생각하기보다 핵무기 자체가 없어져야 진정한 비핵화가 이뤄질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 이유로 북한이 정상국가가 되면 김정은 세습시스템이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김정은 자신이 이미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태 전 공사는 "오슬로 자유포럼에서도 많은 미국 학자가 김정은이 스위스 국제학교에 다니며 접했을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관이 남아 있다면, 이를 이용해 북한을 정상국가로 만들 방법을 고민했다"며 "그러나 북한에서 학교를 다니지 않은 김정은은 세계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독재자와 독재자 가문의 운명을 잘 알며, 또 자신과 자신의 가문이 어떤 심판을 받을지 잘 안다"고 꼬집었다. 이어 "리비아 카다피, 이라크의 후세인 등의 자녀 모두 서방에서 공부했으나, 아버지를 지지했고 독재 세습에 염증이 생기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태 전 공사는 "결국 김정은은 개혁과 개방으로 북한이 외국과 정상 교류하여 북한 주민이 정상적으로 사고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며 "김정은 절대 핵을 내려놓지 않을 것이며,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그대로 보유하는 한 북한에 대한 해외투자도 안 되고, 외부 세계에서 북한은 끝까지 폐쇄 상태로 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앞서 하노이 회담에서 영변 핵시설 외에 추가 핵시설을 내놓으라는 트럼프의 요구에 북한은 제재 해제 카드로 영변 외에 다른 추가 '우라늄 농축시설'을 하반기에 내놓을 것으로 예상했다. 태 전 공사는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그대로 가지면서 우라늄 농축시설을 내놓을 것이며, 재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으로부터 큰 핵은폐 시설을 받아냈다고 말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2019 선교통일한국 컨퍼런스
▲기조강연 후 질의응답이 진행됐다. ⓒ이지희 기자
"공포도 주민의 경제적 권리를 누르기 힘들어"

그는 북한의 여전한 세습통치와 핵무기 고도화에도 불구하고 북한 내부에서는 지난 10년간 자본주의가 들어가 주민의 사고와 사회 구조에 상당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붕괴는) 김정은 주위 간부들이 그대로 있는 한 안 된다"며 "대신 북한에서 이념주의, 사회주의 복지의 성공사례를 눈으로 보지 못하고 교과서에서만 본 1990년 이후 태어난 세대를 통해 10~20년 이내에 가능성이 있다"며 오슬로 자유포럼에서의 발언을 재확인했다.

특별히 태 전 공사는 "아랍의 봄이 경제적 권리를 요구한 한 청년의 분신자살로 촉발되는 등 전 세계 사회혁명이 주민의 경제적 권리 요구에서 정치적 권리 요구로 변화된 경우가 많은 것처럼, 북한에서도 주민의 경제적 권리 요구가 정치적 권리 요구로 넘어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영공장의 장마당 의존율이 75~80%로 높아지고, 중국에서 밀수 혹은 자체 생산하면서 북한 내 경제적 자율화가 대단히 많이 진척됐기 때문"이라며 북한 밀수꾼들을 많이 만들어 장마당을 더욱 활성화시키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실제 "2009년 북한 시스템에서도 전 주민의 묵시적 저항운동으로 북한 정부의 화폐개혁이 실패한 사례가 있다"며 "공포도 주민의 경제적 권리를 누르기 힘들다"고 확언했다.

"교회는 탈북자 한국 입국 돕고 맞춤형 콘텐츠 제작"

태영호 전 공사는 이날 한반도 통일 시 가상 시나리오를 계속 공론화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레짐 체인지(정권 교체)가 된다면 김정은과 한배를 탄 핵심층도 고민할 수밖에 없다"며 "통일 이후 김정은만 빼내고 나머지는 손을 잡고 새로운 북한을 건설하는 방안 등 어떤 나라를 건설할 것인지, 현재 정부 소유인 북한 부동산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 가상 시나리오를 계속 공론화시켜 북한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출로를 보고 고민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통일 한반도 시대를 준비하는 한국교회를 향해서는 "중국에 있는 수만 명의 탈북자가 한국 땅에 입국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요청했고, 또 "북한 주민을 위한 '맞춤형 기독교 콘텐츠'를 만들어 은밀히 북한에 들여보내면 큰 시너지를 낼 것"으로 예상했다. 태 전 공사는 "기존 성경책은 북한식 말투가 아니어서 이해하기 어렵다"며 "앞면은 만화성경을, 뒷면은 김일성 역사를 기록해 김일성 혁명 역사가 성경 역사를 조금씩 변경해서 만든 것을 북한 주민이 알게 하고, 성경의 십계명과 북한의 10대원칙을 비교하여 북한 사람들이 즉각 10대원칙이 십계명에서 온 것임을 이해하기 쉽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지희 기자 jsowue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