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G테크놀러지
1980년대 초, 개인 공업사에서 법인으로 전환하며 회사는 본격적인 성장기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공장 규모도 커지고 직원 수도 늘었으며 시스템도 탄탄하게 구축했습니다. 하지만 몇 년을 못 가 예상치 못한 크고 작은 리스크가 한꺼번에 덮쳐왔습니다. 법인 설립 후 관리비, 인건비와 같은 경비 지출이 늘어났고, 신규 아이템 개발비가 예상보다 많이 드는 등 여러 악조건이 겹치면서 자금 흐름이 손 쓸 수 없이 나빠진 것입니다. 특단의 조치를 내리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하며 매달렸습니다. 현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선 전면적인 구조 개선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일차적으로 가족이 살던 아파트 전세를 줄여, 저희 부부와 자녀 삼 남매는 방 두 칸짜리 반지하 전세로 옮겼습니다. 창고와 사무실도 최대한 줄여, 공터를 얻은 뒤 한 편에 컨테이너 건물을 두고 사무실로 사용했습니다. 은행 예금과 보험은 모두 찾아 부채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습니다.

회사 사정이 이렇다 보니 떠나는 직원들도 많았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중에서는 부도 위험이 있다는 루머가 횡행습니다. 저와 가족은 물론 남은 직원들까지 이 고난의 시기가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며 이를 악물고 견뎌내고 있었습니다.

회사 차를 매각한 후 활로를 열기 위해 우선 지입차량을 운전하는 분을 한 분 소개 받았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많은 이분이 회사에 온 첫날, 화물차의 좌석 뒤편엔 북어와 실타래가 덜렁 매달려 있었습니다. 어디서 고사를 지내고 온 것 같았습니다.

그분과 함께 저는 성경의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면서 전국을 밤낮없이 다니며 시장개척을 했습니다. 당일치기로 부산을 다녀오는 날도 많았습니다. 밤에 서울을 출발해 새벽에 광주에 도착했을 땐, 그분과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물건을 하차하고 거래처 대표님 집에서 손수 차려준 따뜻한 아침밥을 먹던 일도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하루는 밤 11시가 넘은 늦은 밤, 지방 영업을 끝내고 대전과 신탄진을 거쳐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분이 장시간 운전으로 너무 피곤해하셨습니다. 당시 운전이 미숙하던 저는 어떻게든 쉬게 해드리고 싶어 운전대를 바꿔 잡았습니다. 코너를 빠르게 돌았을 때 순간 트럭이 휘청거리며 전복될 뻔하면서 머리가 쭈뼛 서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손길을 또 한 번 느끼며 속으로 수없이 감사하고 감사했습니다.

제품이 필요한 곳이라면 전국 어디라도 내 집처럼 생각하고 달려가는 시간이 쌓이자, 회사 형편이 점점 좋아졌고 위기설도 잠재워졌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신규 거래처를 확보하면서 보란 듯이 멋지게 재기할 수 있었습니다.

또 하나의 잊지 못할 기쁜 일은 저와 함께 영업을 뛰다 나중엔 영업소장까지 맡아 회사 발전에 귀한 일익을 담당한 그분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받은 일입니다. 후에 그분의 가족도 구원받았습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극도로 몸이 피곤한 상황에서도 틈틈이 저는 그분과 성경을 보고, 기도하고, 예배하며 복음을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때가 차매 성령님께서 그분의 마음을 활짝 여셔서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신 것입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터널을 지날 때, 한 줄기 빛을 간절히 소망하면서 온 힘을 다해 구하고 찾고 두드렸더니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넘치는 축복을 우리에게 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십자가 복음을 증거하는 동시에 복음의 삶을 나눌 때 한 영혼과 가족이 모두 구원받는 역사를 일으키셨습니다. 광야의 어려운 길도 무사히 통과하게 도우시고, 모든 순간마다 우리를 보살피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에 감사와 영광과 찬송을 돌립니다.

이장우 일터사역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