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청소년 집단 폭력 사건이 종종 보도되며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그 이면에는 한 아이가 여러 명의 아이한테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일이 벌어지는데, 우리는 이것을 '왕따'라고 부른다.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는 왕따를 넘어 폭력 대상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왕따 문제를 폭력, 특히 집단적 폭력을 동반하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인식하기도 한다.

그런데 가해자들의 부모는 자식을 훈계하거나 피해자들에게 잘못을 빌기보다는 자기 아이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과 처벌을 피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폭력이 근절되지 않고 계속 반복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사회 문제가 된다는 것은 피해자도 가해자도 모두 개인의 범주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아동보육학과는 보육교사로 취업하기 위한 학과이다. 졸업 후 어린이집에서 유아들을 보살피는 보육교사들에게 양육자의 입장에서 돌볼 것을 강조하려고 내가 늘 하는 말이 있다. '대상관계이론'인데, 대상관계란 어린 시절에 나를 양육하는 양육자가 누구냐에 따라 대인관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이다. 양육자는 자신을 낳아준 엄마가 양육자가 되는데, 아이는 이 양육자를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세상은 어떤 곳인지, 그리고 자신과 세상의 관계는 무엇인지 알아가게 된다. 이것은 성인이 되어도 우리의 무의식에 남아 있기 때문에 대인관계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이와 같이 양육자의 양육태도에 의해 인격이 형성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누가 어떻게 양육하느냐는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대인관계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여성의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또 가치관의 변화로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증가하고 있다. 결혼을 하고도 많은 여성이 여러 가지 이유로 맞벌이를 해야만 하는 사회 환경 속에 살고 있다. 이럴 경우 부모는 어쩔 수 없이 자녀 양육에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 된다. 양육자가 부모에서 타인으로 바뀌는 것이다.

조부모가 양육하는 가정은 조부모의 사랑 속에서 성장한다. 하지만 손자녀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예쁘고 사랑스러워도 양육을 맡는 것에는 부정적인 반응이 많다. 자식의 처지를 이해는 하지만, 건강을 포함한 양육의 실제적인 어려움과 여가 생활을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 양육 책임을 조부모에게 맡기는 것은 이기적이라는 생각 등도 많다. 이러한 까닭에 어쩔 수 없이 대부분 시간을 어린이집에서 보내는 아이들이 많다.

물론 이것이 나쁘다고만 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부모가 사랑으로 양육하는 것과 집단으로, 의무적으로 보살피는 것은 아이들이 느끼는 정서적 안정감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인격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그때부터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생존에 몰릴 것이고, 내 잘못도 남의 탓으로 돌리는 방법을 배울지 모른다. 아이는 결국 부정적인 자기표상을 가지게 된다.

오래전,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는 형제들과 동네 친구들과 다투면서도 화해하고 배려하는 것을 부모와 친구 부모들로부터 훈계, 때로는 체벌로 자연스럽게 배웠다. 그러나 지금의 부모들은 너무 바빠서 그럴 시간이 없다. 대신 맞지 말고 차라리 때리고 오라고 여러 가지 운동을 가르친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얼마나 기대할 것인가?

입시라는 제도에 갇혀 우리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타인에 대한 배려나 윤리, 질서보다 오로지 앞만 바라보며 경쟁하도록 교육받고 있다. 공부 앞에서는 모든 것이 면제된다. 가정마다 자녀 수가 적어지면서 이런 현상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모든 것을 자녀 위주로 생활하고 자녀 교육을 위해 부모는 무슨 일이든지 마다하지 않는다. 자녀의 성향은 무시되고 어떻게든 성공해야 한다는 목적 하나로 부모들은 힘들어도 자녀 교육에 모든 것을 투입하고 자녀는 그 부담을 그대로 받고 있다.

g1.jpg이러한 상황에서 학교 왕따 문제, 이로 인한 폭력 문제의 답은 과연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보호관찰이라는 법 테두리 안에서 상담하고 사회봉사하면 왕따 가해자들이 뉘우칠까? 아니면 강하게 처벌하면 해결될까? 일차적 책임은 부모의 양육태도, 즉 가정환경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그다음은 학교 교육일 것이다.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상대방에게 전달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갖도록 교육해야 하지만, 경쟁과 실적 위주의 학교에서는 한계가 있다. 아이들의 성격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교육이 정답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이 또한 부모의 의무가 아닐까 돌아봤으면 한다.

이인혜 이사
왕따없는세상운동본부 이사(http://outcast.or.kr)
누가요양복지센터장
덕성여자대학교평생교육원 외래교수
동원대학교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