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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때 있었던 일이다. 폴란드 출신의 한 신부가 일본에서 봉사하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관여하고 있는 사회사업기관을 위한 기금을 모집하기 위해 조국 폴란드를 찾았다. 그런데 그가 폴란드에 머무는 기간에 독일의 히틀러가 느닷없이 폴란드를 점령했다. 그리고 그 나라의 장년들과 젊은이들을 강제 수용소에 수감하고는 군사지원에 동원했다. 그때 신부는 유대인을 숨겨주었다는 죄명으로 체포되어 수용소에 끌려들어 갔다. 수용소에서는 폴란드의 많은 애국청년과 장정들이 여러 방에 나뉘어 감금되어 있었고, 그들은 이른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강제 노동에 동원되곤 했다. 

용기 있는 사람들은 수용소를 탈출해 도망치기도 했다. 그러다 독일군에 넘겨져 재판도 받지 못하고 처형되는 일도 빈번했다. 독일군은 수용소에 수감된 사람들이 탈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 벌칙을 만들어 엄격히 감시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 가운데 하나는 같은 방에 수감되어 있는 사람이 탈출하다가 체포되면 사형에 처했고, 반대로 탈출이 성공해서 놓치게 되면 그 사람을 감시하지 않았다고 해서 같은 방의 한 사람을 대신 사형시키는 규칙이었다. 동료를 위해서라도 탈출하지 못하게끔 연대 책임을 지게 한 것이다.

어느 날 새벽에 신부가 일어나 보니, 옆자리가 비어 있었다. 탈출한 것이다. 여기저기 살펴보았으나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웅성웅성 잠에서 깨어난 동료들이 탈출을 확인했다. 같은 방 동료들은 착잡한 심정을 억누르면서 운동장에 모여 점호를 받았다. 그런데 독일 장교 한 명이 나타나 지난밤에 한 명이 탈출하다가 체포되었다면서 수감자 한 명을 그들 앞으로 끌고 나왔다. 신부 옆자리에 있던 장년이었다. 죽음을 각오한 그는 같은 방 동료들을 바라보면서 작별인사를 나눴다. 말은 못 하지만 눈빛으로 나누는 인사였다.

그와 신부의 눈이 마주쳤다. 신부는 그의 눈빛을 보면서 도저히 그대로 있을 수가 없어 자기도 모르게 독일 장교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 사람은 내 옆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내가 누구보다도 그의 사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세 어린아이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그래서 집으로 가야 한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당신에게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을 테니 그 심정을 잘 이해할 겁니다. 이 사람에게는 가정으로 돌아가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권리와 마찬가집니다. 이제 이 사람이 처형되면 그것은 다섯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독일 장교는, 그렇다면 누군가가 대신 목숨을 버려야 이 사람이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누구도 이 사람을 대신해 죽을 사람은 없지 않냐며 자신하는 자세였다. 신부는 그러면 내가 대신하겠으니 이 사람은 살려달라고 말했다. 독일 장교가, 당신의 목숨은 아깝지 않냐고 묻자 신부는 담담히 말했다.

“다행히 나는 신부라서 나 한 사람으로 끝나면 됩니다. 그러나 저 형제는 네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내가 대신할 테니 더는 문제 삼지 마십시오.” 

그렇게 신부는 처형되었고, 탈출을 시도했던 그는 동료들과 함께 노동 현장으로 끌려나갔다. 늦게 일을 끝내고 돌아온 이들은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말없이 들어와 자리에 누운 채로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신부 옆자리였던 그는 말없이 흐느껴 울었다. 그러다 밤이 깊어졌다. 제일 나이 많은 사람이 긴 침묵을 깨고 말을 꺼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용기를 갖고 살아나가자. 아직 세상이 이렇게 착하고 아름다운데 왜 희망을 버리겠는가….” 

이 사실은 그 신부가 일본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되면서 점차 알려지기 시작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엔도 슈사쿠는 현장으로 가 많은 사람을 만나 그 이야기를 듣고는, 그 사실이 너무 감동적이고 잔잔한 영향력을 남길 수 있기에 『침묵』이라는 작품으로 남겼다.

작금의 세계는 무한 경쟁이라는 표어를 앞세우면서 희망과 건설의 길보다는 회의와 때로는 절망에 가까운 길을 택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인간들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본능적 욕망은 이성적 판단과 노력보다 강한 것 같다. 인간은 선으로의 가능성보다 악으로 향하는 본능을 안고 사는 존재인 듯싶다. 

이처럼 악으로 향하는 역사와 사회적 범죄를 막을 방법과 선으로 향하는 원동력은 과연 존재하는가. 그러한 긍정과 희망의 메시지를 제시해 줄 사람은 누구인가. 우리는 그 해답을 주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기독교 정신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으로서의 진리이며 사랑의 실천인 것이다. 우리는 그 이상의 가르침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예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다. 폴란드의 한 신부도 그 뒤를 따랐다. 그것이 더 많은 이웃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내가 사랑의 씨앗이 되는 길이다.

- 『인생의 길, 믿음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중에서
(김형석 지음 / 이와우 / 276쪽 / 14,000원)<북코스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