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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시 교육청이 강서구 옛 공진초등학교 부지에 장애인 특수학교를 설립하려다 지역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주민들은 “지역구 국회의원인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의 공약대로 한방병원을 건립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지난 9월 5일 토론회는 우여곡절 끝에 2시간 30분가량 진행됐지만, 특수학교 설립을 지지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 모두 고성과 야유를 주고받으며 조금도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 장애아 학부모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고, 주민들 앞에 무릎을 꿇고, 큰절까지 하면서 학교 설립을 양해해달라고 읍소했지만 소용없었다.

이처럼 일부 지역주민들이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데는 여러 가지 사정과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그 저변에는 특수학교를 혐오시설로 생각하는 사고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주민들의 반발로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이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온라인을 중심으로 설립 지지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강서구를 사랑하는 모임’이라는 단체가 8월 21일 시작한 특수학교 설립 지지 온라인 서명에는 9월 11일 기준 9만1,000명이 참여했다. 강서사랑모임 측은 참여자가 10만 명이 되면 서명을 서울시교육청과 강서구청, 보건복지부 등 관련 기관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한다. 또한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에도 ‘장애인의 교육받을 권리, 특수학교 건립으로 되찾아달라’는 등의 제목으로 공진초 터 특수학교 설립을 촉구하는 청원이 잇달아 올라오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한편 방송인 김미화 씨는 ‘집값 하락’을 이유로 장애인 특수학교 건립에 반대하는 강서구 지역주민에게 “집값 하락 걱정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김 씨는 지난 9월 10일 자신의 트위터에 “강남구 수서동의 아파트 인근에 밀알학교라는 장애인학교가 있다”면서 “처음 이 학교를 지을 때 주민들이 집값 떨어진다며 연판장을 돌리고 밤에 횃불을 켜고 당번 서며 공사를 못 하게 막았다”고 적었다. 그러나 “지금 집값이 천정(부지)”이라면서 “우리 더불어 살자”고 했다. 이러한 소식들을 접하면서 오래전에 읽었던 글이 떠올랐다.

그해 티베트에는 7월 30일부터 8월 9일 사이에 폭설이 내렸고, 9월 말쯤이 되자 길은 얼고, 산천은 눈 속에 싸였다. 눈이 내리지 않는 여름이라 하더라도 천년설의 눈사태 때문에 히말라야의 산길들은 사지로 변하는 때가 많았는데, 눈까지 덮이고 귀로가 더욱 어렵게 되었다. 썬다는 더 추워지기 전에 심라 힐로 돌아가야 했다. 그는 랑게트 쪽으로 가는 길목에서 티베트인 한 사람과 동행했다. 앞을 분간할 수 없는 눈보라와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이었으나 동행이 있으니 힘이 되었다.

한참 동안 사력을 다해 산길을 전진해 가니, 둘의 시야에 웅크리고 있는 동사체 하나가 나타났다. 얼어 죽은 모양이었다. 시체는 길에서 약 십 미터나 떨어진 가파른 비탈 쪽에 있었다. 썬다는 동행에게 구조하여 업고 가자고 제의하였다. 그랬더니 그 동행은 “그러다가는 우리도 얼어 죽소. 나는 살아야겠소” 하면서 매정하게 고개를 젓고는 계속 나아가 버렸다.

썬다는 비탈을 조심스럽게 더듬어 내려가서 그의 생사를 확인했다. 아직 살아 있긴 했으나 넘어져 다친 데다 몸이 얼어 죽기 직전이었다. 썬다는 죽은 목숨 같은 그를 끌어올려 들쳐 업었다. 그를 업고 눈보라 길을 뚫어 랑게트까지 가야만 한다. 어떡하든 움직여야 했다.

업었다가 앞으로 안았다가 하면서 휘청이는 발걸음을 뗀 지 몇 시간이 지났을까? 고갯마루에 거의 다다른 썬다의 시야에 또 하나의 시체가 들어왔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그는 바로 몇 시간 전에 혼자 살겠다고 가버렸던 동행, 그 사람이었다. 눈 속에 파묻히다시피 웅크리고 쓰러진 그는 이미 꽁꽁 얼어 죽어 있었다. 둘은 서로의 밀착된 체온이 내는 열기로 인해 살아남았는데, 목숨을 건지겠다고 하던 그는 혼자의 체온이 식어내려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썬다는 의식을 되찾은 동행과 랑게트행을 계속했다.

조금이라도 피해를 보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따라서 그러한 본성을 탓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눈앞의 이익이 반드시 자신의 이익에 부합되는 것은 아니다. 위의 글에서 보듯이 썬다는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려는 선한 마음으로 생사의 기로에 놓여 있던 사람과 동행함으로써 결국 자신의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마이클 샌델은 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정의’란 우리 모두가 공공선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어차피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 속에서 때로는 도움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도움을 주기도 하며 서로 어우러져 살아가야만 한다. 지금 당장은 불편하고 피해를 보는 것 같지만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배려한다면 우리 사회는 우리 모두의 바람대로 진정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곳이 될 것이다. 일찍이 옛말에 ‘적선지가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이라 했다.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모든 것을 선한 마음으로 대한다면 반드시 아름다운 결실을 맺게 될 것이다. 

최종옥 북코스모스 대표

『히말라야의 눈꽃: 썬다 싱의 생애』 중에서
(이기반 지음 / 홍성사 / 208쪽 / 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