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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정말 온 맘을 다해 사랑했어요. 아빠도 나도. 건우가 원하는 것은 거의 다 들어주며 아이를 억압하지 않고 키웠지요. 건우 누나가 사춘기를 심하게 앓아서 제가 그걸로 너무 힘들어하다 지금의 공황장애가 왔기 때문에 그 이후로 아들에게는 통제하거나 뭘 강요하지 않았어요. 그냥 아이가 즐겁게 잘 자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건우는 자기 하고 싶은 걸 솔직히 말하고 생생히 살아서 스트레스 없이 늘 맑고… 저 미소 보세요. 얼마나 해맑은지.

그런데 우리 건우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요. 교통사고라거나 병이라면 운명이라고 하겠는데, 어떻게 한 학교 아이들이 그렇게 많이, 한날한시에 죽는 운명이 있을 수 있겠어요. 이번 사고 명단에 김건우만도 세 명이에요.

그날 나는 건우와 마지막 통화도 못 했어요. 그 전날 저녁 10시쯤에 통화한 게 마지막이었죠. 자기가 림보게임 이벤트에서 일등 먹어서 제주도 왕복 티켓 탔다고 엄마 제주도여행 보내준다고 하더라구요. 엄마 한 번도 못 가봤으니 가보라고. 그런데 제가 “엄마는 배를 무서워하잖아. 그래서 못 가.” 그렇게 말했어요. 아이가 좋아서 아주 들떠 전화했는데 그렇게 말한 것이 못내 걸려요. 나중에 살아온 애한테 들었는데 건우가 효도한다며 너무 좋아했다고. 그런데 그걸 내가 못 간다고 했으니….

건우는 핸드폰도 못 찾아서 동영상도 친구들 거 복원된 것에서 볼 수 있었지요. 다른 부모들은 동영상들을 찾아서 보더라구요. 그런데 저는 무섭고 그래서 한동안 못 봤어요. 우리 아들이 너무 무섭다고 하지 않았을까 싶어서 더욱 볼 수 없었어요. 건우가 겁이 많았거든요. 무서운 영화 보고 오면 집에서 화장실도 못 갔어요. 자려면 불을 다 켜요. 그 생각을 하면 애가 얼마나 무서웠을까 싶어서….

그런데 한번은 예상치도 못하고 영상을 하나 보게 됐어요. 1초 정도 건우 모습이 나와서 “앗, 건우다” 하는데 지나가더라구요. 그때 가슴이 덜컹하고 또 안정이 안 돼서 안 봐야겠다 했는데 뉴스에 계속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같은 반 아이가 찍은 영상을 받아서 봤지요. 우리 아들이 약간 겁먹은 얼굴로 있더라구요. 그때 심하게 울었더니 아빠는 보지 말라고 하구요.

다른 엄마들은 다 찾아서 보는데 나는 안 보려 하니까, 이건 아닌 것 같아서 인터넷을 뒤져서 찾아봤어요. 그 마지막 동영상에서 구명조끼 입는 장면이 나오더라구요. 그런데 우리 아들이 거기서 친구들에게 구명조끼를 챙겨주고 있더라구요. 하나 날라다주고 또 하나 날라다주고, 앞에 있는 여학생이 구명조끼가 작아 안 맞으니까 다른 것 가져다 비닐 뜯어서 주고 그래요.

그 모습을 보니까 우리 아들이 이렇게 하고 있었구나, 친구들을 도와주고 있었구나 싶었어요. 또 배가 기울어 떨어지려는 아이가 있었는데 얘가 그 친구를 끌어올리려 했는지 끙끙거리는 소리만 들려요. 우리 애가 체격이 작아서 못하니까 옆에 친구랑 같이 둘이서 끌어올리는 모습도 있고… 아, 우리 아들이 이런 모습으로 있었구나, 겁에만 질리지 않고 이렇게 행동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의연한 모습을 보니 그나마 낫더라구요.

동영상 보고 건우 친구 엄마가 전화가 왔어요. 동영상 봤냐고. 거기서 나오는 목소리, “준혁이 구명조끼 어떡해!” 하는 목소리가 건우 목소리 같다고 연락이 왔어요. 나는 봤는데도 건우 모습 보느라 목소리를 놓쳤는데 준혁이 엄마는 자기 아들 이름이 나오니까 귀에 꽂혔나 봐요. 그러면서 준혁이를 건우가 걱정을 해줬다고 들어보라고. 준혁이는 앞으로 나가 있었는데 구명조끼가 부족해서 입지 못했었나 봐요. 그걸 건우가 걱정하는 장면이었어요.

어쩜, 아이들이 그렇게 무섭고 힘든 상황에서도 서로 챙겼구나 싶었어요. 우리 아들도 자기만 생각하지 않고 이미 밖으로 나가서 안 보이는 친구까지 챙기고 있었구나 싶어서 “우리 아들 너무 장해”라고 이야기해줬어요. 피하고 안 보려던 영상이 오히려 내게 겁에 질려 있는 아들 모습을 잊게 해줬어요. 물속에 잠기는 순간에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 아이들이 저렇게 했구나 그것만 생각하려고 해요. 아빠는 그래도 못 보더라구요. 제가 보고 말해줬어요.

다른 애들은 문자도 전화도 했는데 어떻게 우리 아들은 전화도 문자도 안 했을까 되게 의문을 많이 가졌었어요. 그런데 그 순간에 우리 아들은 그렇게 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 엄마한테 사랑한다는 말 안 해도 네가 그렇게 행동하고 있어서 엄마는 참 좋아. 어려울 때 남 도와주라는 엄마 말대로 행동했구나, 내 아들. 엄마도 서운함을 잊을게. 잘 지내. 자랑스러운 내 아들.”

- 『금요일엔 돌아오렴』 중에서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348쪽 / 12,000원) <북코스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