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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고려인의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 80주년이 되는 해다. 1937년 9월 스탈린은 소수민족 분리정책에 따라 연해주에 정착해 살던 17만여 명의 한인을 화물열차에 실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한 달이 넘는 시베리아 횡단 여정에 추위와 배고픔, 질병으로 죽어 나간 시체들을 열차 밖으로 던지며 도착한 곳은 척박한 황무지였다. 이곳에서도 소수민족으로서 차별과 냉대는 여전했지만, 한민족으로서 정체성과 뿌리만큼은 잊지 않았다. 스스로를 고려사람, 고려인으로 부르는 그들은 4~5세대를 지나며 다시 선조들의 나라 한국을 찾고 있다. 카레이스키로도 일컫는 고려인은 현재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크라이나 등 구소련 지역에 55만 명이 거주하며, 한국에는 2~3만여 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서 생산한 섬유를 수출하는 지에스티 코리아(GST KOREA) 황지호 대표도 증조할아버지의 나라 ‘한국’을 찾은 고려인 4세대다. 카자흐스탄 카라간다(Karaganda)에서 출생한 그는 재외동포재단 장학생으로 서울대 언어학과 수료 후 섬유무역 회사에서 해외영업부 사원으로 일하다 2015년 GST KOREA를 설립했다.

근 100년 만에 민족 정체성 되찾아 한국 땅 밟아
선교하기 위해 배운 한국어로 킹덤컴퍼니 사역까지

13세 때 구소련 붕괴 직후 한국에서 파송된 선교사가 개척한 교회에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그는 현지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하고 다년간의 한국 유학 경험으로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했다. 황 대표는 “증조할아버지께서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를 당했는데, 제가 근 100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 것은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러시아를 모국어로, 한국어를 제2언어로, 중국어를 제3언어로 배우고 한국에서 회사 경영을 맡게 된 것도 하나님의 분명한 계획이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특히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통일처럼 한국과 북한의 복음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그는 “러시아와 북한이 지정학적, 역사적, 심리적으로 가깝고, 조상의 강제 이주 사연도 통일 후 북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한국기독실업인회(CBMC) 서울강남지회의 차세대 CEO 모임인 청우회 총무로 봉사하며 훈련받고 있었다. 젊기에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지 모르나, 그보다 앞서 수많은 실패와 위기를 극복한 선배 CEO들로부터 신앙적 지혜와 노하우를 전수받아 자신만의 킹덤컴퍼니 경영의 지름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2시간 가까이 그의 인생 여정에 대해 들으며, 순수하고 긍정적인 성품인 그를 선택해 사용하시려는 하나님의 세심한 손길이 느껴졌다. 인터뷰는 지난달 중순 서울숲역 포휴 8층 GST KOREA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h33.jpg15세에 예수님 영접, 선교하고 싶어 한국어 전공

고려인 4세대로 태어난 그는 원래 한국어를 전혀 못 했다. 고려인 2세대인 할머니는 러시아어와 한국어를 절반 정도 섞어 사용하셨고, 3세대인 부모님은 한국어를 알아듣지만 말하진 못하셨다. 황지호 대표는 “고려인 4세대부터는 대부분 한국어를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한국어를 완전히 잊어버린 세대”라며 “어렸을 때부터 다른 소수민족 친구들은 자기 민족 언어를 배우는데, 나는 한국 사람인데 한국어를 못한다는 아픔이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친구들이 종종 ‘너는 한국 사람인데 한국어를 못하니 진짜 한국 사람이 아니다’고 놀리는 통에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열정이 더욱 강해졌다.

1991년 구소련 붕괴 후 한국 선교사들이 중앙아시아로 많이 파송되면서, 이듬해 그가 사는 도시에도 한국의 정정옥 선교사가 교회를 개척하고 유치원을 임대해 주일학교 사역을 시작했다. ‘진짜 한국 사람’을 보고 싶었던 황 대표는 마침 그보다 한 살 위인 선교사의 큰아들과 친해졌고, 한국어 찬양이 재미있어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회개한 것은 2년 뒤인 15세 여름방학 때였다. 타 교회에서 동갑내기 자매가 주일학교 사역을 도와주러 왔는데, 그 자매처럼 영적으로 성장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났다. 성경을 읽기 시작하면서 학교생활부터 모범적으로 바뀌었는데, 여름방학이 끝난 후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그를 보고 놀라며 ‘무슨 좋은 일이 있었느냐’고 물어볼 정도였다고 한다.

황 대표는 “나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를 영접하게 하시고 저를 새 사람으로 바꾸신 것을 깨닫게 되었다”며 “16세 때, 선교사님처럼 삶을 주께 헌신하고 싶었고 사역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선교사님께 말씀드렸다. ‘내가 러시아어를 배우는 것보다 네가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 더 빠르겠다. 앞으로 사역할 때도 언어가 중요하니 일단 한국어부터 제대로 배워봐라’는 조언을 받았다”고 말했다.

선교하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겠다는 분명한 목적이 생기니 갑자기 마음이 바빠졌다. 90년대 후반에도 한국어과가 있는 대학은 드물었고, 인기 학과였기 때문에 입학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2년 동안 영어 과외까지 받으며 대학입시에 집중했다. ‘하나님, 길을 열어주세요. 무조건 한국어과에 들어가야 됩니다’고 기도하면서 목표를 세우고 하나하나 실행해나갔다.

그가 목표했던 명문 동방대학교의 한국어과 모집 정원은 40명, 그중 20명은 장학생인데 집안 형편상 장학생이 안 되면 대학에 진학할 수 없었다. 끝에서 3번째로 장학생 명단에 들자 마을에선 난리가 났다. 그는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셔서 첫 번째 기적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두 번째 기적은 한국 유학이었다. 살던 지역에서는 30평 아파트를 살 수 있는 비용이 한국 유학비용으로 들었다. 주말만 되면 약 120km 떨어진 고향 교회로 내려가 봉사와 찬양을 하던 그는 3학년 여름방학 때 새벽기도를 나가 시편 50편 15절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는 말씀을 응답으로 받고 평안과 확신을 얻었다. 결국 집안 몰래 국제교육진흥원의 9개월 어학연수에 필요한 모든 서류를 접수시켰고 합격 통지를 받았다. 

한국으로 유학을 떠날 때까지도 꿈과 비전만 있지 재정은 턱없이 부족했던 그는 하나님께서 모자란 학비와 기숙사비를 채워주시는 경험을 했다. 그를 양육시켜 준 선교사의 파송교회에서 당시 대학원생이던 한국한부모가정사랑회 회장 황은숙 집사를 만나 기적처럼 한 학기 학비를 지원받았다. 황은숙 집사 외에도 이숙희 집사, 학교 담임선생님 등 고마운 분의 도움에 더욱 힘을 얻어 학비, 기숙사비 마련하고 학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대학 졸업 후엔 미국에서 신학을 배우고 싶었다. 그 와중에 하나님의 은혜로 4학년 졸업 전, 시험을 쳐서 재외동포재단이 선정하는 장학생으로 선발돼 서울대 대학원 언어학과에서 공부했다.

섬유 무역 관련 통역 하다 비즈니스 세계 눈 떠

경영과 전혀 관계없는 삶을 살던 그가 경영자로 나서게 된 계기는 대학원 시절, 친구 요청으로 섬유 무역을 하는 우크라이나인 빅바이어의 통역을 맡으면서였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1~2년간 그의 비즈니스를 돕게 되었고, 관련 무역업체, 공장도 많이 알게 됐다. 여러 한국업체에서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는 상황이 되자 4남매 중 장남으로서 연로하신 부모님을 더 많이 안정적으로 지원해 드리려는 마음에 가장 좋은 조건의 회사에 취직했다. 마침 중국 청도지사로 발령 나 대학생 때 제3외국어로 배우던 중국어를 배울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현장에 가보니 표준어를 배울 수 없는 환경이어서 회사를 그만뒀다. 마음 한편에 선교의 꿈이 항상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학생 비자 만료를 눈앞에 둔 가운데, 이번엔 우크라이나인 빅바이어의 거래처였던 GST의 중국인 대표로부터 제의를 받아 2006년부터 일하게 되었다. 하지만 섬유산업이 하향세에 접어들면서 중국인 대표는 사업을 접었고 2015년 그가 GST KOREA를 설립했다. 대구 섬유업체들의 구조조정, 유가 하락, 미국과 EU의 러시아 제재 여파로 주요 시장이던 구소련 지역의 경기 침체, 우크라이나 환율 상승 등 최악의 시기였다. 러시아, 구소련 시장에서 다른 나라로 눈을 돌려 한국 섬유를 수출하면서 회사는 살아남았다.

평소 이탈리아 밀라노, 프랑스 파리 전시회를 참관하며 시장 흐름을 조사한다는 그는 소비자의 트랜드를 읽고 러시아나 해외 각국 시장에서 일반인들이 소화할 수 있는 색감의 원단을 개발하는 일을 한다. 주로 점퍼, 코트, 패딩, 아웃웨어 등의 원단을 취급한다. 공장이 없기 때문에 기도하면서 원단 개발에 집중해 수출하고 있다.

하나님 주권 아래 하나님이 경영하는 킹덤컴퍼니
청지기 역할 잘 감당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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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호 대표는 짧은 경영 기간 절대 타협해선 안 된다는 것, 또 주변 선배들의 조언처럼 하나님 말씀만이
정답임을 깊이 깨달았다고말했다. 그는 눈앞의 이익보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킹덤컴퍼니로서 정체성을지켜나가기로 결단했다며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모든 과정을 즐기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 이지희 기자

“하나님께 맡기고 모든 과정 즐기고 싶어”

황지호 대표가 CBMC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CEO가 되기 2년 전인 2013년 서울강남지회의 초청잔치에 가면서부터였다. 매주 성경공부를 통해 말씀을 깊이 배우는 것도, 공동체적 분위기도 좋았다는 그는 지회의 변화와 발전을 위해 젊은 CEO들을 더 많이 초대해 함께 킹덤컴퍼니의 꿈을 이뤄가고 싶다고 말했다. 청우회는 지난 10월 14일 ‘청년 예수, 하나님의 기업가들’을 주제로 초청잔치를 열기도 했다.

그는 “하나님이 제 인생의 주인이시라면, 주인 자리를 하나님께 내어드리고 순종하고 따라가는 것이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킹덤컴퍼니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하나님이 직접 경영하시고, 저는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면서 청지기 역할을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물론 지금도 회사를 운영하며 전쟁을 치르고 있고, 당장 안정 궤도에 올려야 하는 목표가 있지만 하나님이 저를 계속 훈련시키시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짧은 경영 기간 그가 깨달은 것은 ‘절대 타협해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고. 또 주변 선배들의 조언처럼 ‘하나님 말씀만이 정답’이라는 점을 깊이 경험했다고 했다. 눈앞의 이익보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킹덤컴퍼니로서 정체성을 지켜나가기로 결단한 그는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모든 과정을 즐기고 싶다. 지금 이 순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회사가 되도록, 모든 순간 하나님을 더 가까이 만나기에 힘쓰고, 하나님의 역사를 간절히 구하면서 가고 싶다”고 말했다.

선교사의 꿈을 여전히 품고 있는 그는 가는 선교사는 못 되지만 보내는 선교사가 되고자 구소련 일대 몇몇 선교사 가정을 후원하고 있다. 회사가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면 선교사 사역과 선교사 자녀 장학금 지원, 선교사 노후 연금기금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하나님이 어떤 계획으로 저를 먼저 구소련 지역에 보내 러시아어, 한국어를 배우게 하시고 회사까지 맡기셨는지 다 알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순종하여 가고 싶습니다.” 다양한 거래처와 교류하며 복음을 전할 기회도 많이 얻고 싶다는 그가 앞으로 GST KOREA를 어떤 킹덤컴퍼니로 만들어 나갈지 기대와 관심이 모아진다.

이지희 기자 jhlee@ch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