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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가 약해 많은 비용을 내야 한다 

한국사회는 전반적으로 서로를 신뢰하지 않는다. OECD 조사 자료(2010~2014 기준)에 의하면, ‘보편적으로 다른 사람을 믿을 수 있다’에 한국은 32.2%만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이웃을 얼마나 신뢰하는가’에 대해서는 56.5%만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OECD 조사 32개국 중 신뢰로 대변되는 사회적 자본 지수가 29위로 최하위권이다.

기업에 대한 신뢰수준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한국인의 직업의식 및 직업윤리(2014)’ 조사에 의하면, 우리 국민은 고용주 및 사용자의 직업윤리에 대해 7점 만점에 3.87로 평균 이하라고 평가하고 있다. 직원들도 자기 회사를 신뢰하는 정도가 낮다. 세계적인 커뮤니케이션 기업인 에델만(Edelman)이 2015년 조사한 바에 의하면, ‘내가 일하는 회사를 신뢰한다’에 한국 임직원은 55%만이 그렇다고 응답했고 이는 조사 대상 국가 28개국 중 23위를 기록했다.

회사 경영에 있어서 신뢰수준이 낮으면 그만큼 비용 지불을 많이 해야 한다. 회사 간 거래에서 상호 신뢰가 없으면 서로를 감시하고 체크하는 비용이 들어간다. 회사가 종업원을 신뢰하지 못하면 종업원을 철저하게 관리할 사람이 필요하고 규칙 준수 여부를 감독하느라 비용은 늘어난다. 우리 사회는 기업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감시, 감독하는 비용이 크다. 혹시 기업들이 탈세하지 않을까, 오염된 폐수를 남몰래 버리지 않을까 염려하게 되면 이를 감시할 사람들을 더 많이 둘 수밖에 없다. 이런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회사가 제품의 품질을 속이면 고객들은 그만큼 손해를 본다. 제품을 제때 사용하지 못하고, 신경을 쓰고, 보상을 받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등 유무형의 비용을 더 내게 된다. 

자기실현적 예언의 악순환

한국사회에는 다른 사람을 너무 믿거나, 정직하면 손해 본다는 믿음이 있다. 실제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착하면 손해, 정직하면 손해’라는 이야기들을 무수히 발견할 수 있다. 신뢰하면 안 된다는 사회적 믿음이 생기는 이유에 대해 어떤 심리학자는 기억의 오류 때문이라고 한다. 정직한 사람이 아무런 피해를 보지 않고 성공하면 그러려니 하면서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이 한 번이라도 실패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두고두고 기억한다. 그리고는 ‘정직하면 손해 본다’는 믿음을 강화시킨다. 

서로를 신뢰하지 않는 게 낫다는 것이 사회적 믿음이 되면 자기실현적 예언이 된다. 자기실현적 예언이란 상대방에 대해 어떤 믿음을 갖고 있으면 그 믿는 바에 따라 행동하게 되고 상대방은 그것에 영향을 받아 실제로 그 믿는 바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기업 경영에서 회사가 직원들을 믿지 못하면 감독을 많이 하게 되고 직원들은 그것에 익숙해져 감독할 때는 성실하게, 그렇지 않을 때는 대충 하는 모습을 보인다. 감독하는 입장에서는 역시 사람은 믿을 수 없다는 자기 신념을 확고히 하게 되고 더욱 감독을 강화하면서 자기실현적 예언이 된다. 이런 좋지 않은 자기실현적 예언이 증폭되면 사회 전체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감시하는 비용은 더욱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신뢰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

국내외를 불문하고 많은 기업은 신뢰를 ‘핵심가치(core value)’로 삼고 있다. 글로벌 일류기업을 분석한 많은 연구들은 신뢰가 기업 경쟁력의 원천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누구나 신뢰를 중요하다고 하지만 실제 신뢰수준은 높지 않다. 이유는 무엇일까?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상당히 위험을 감수해야 하므로 신뢰를 실천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신뢰를 기독경영원리로 삼자는 것은 바로 이 점 때문이다. 세상이 신뢰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실천은 별개로 여기는 현실에서 기독경영을 하는 사람들은 신뢰를 제대로 이해하고, 제대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신뢰를 하면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고, 심지어 회사가 심각한 어려움이 처할 수도 있지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단 3:18)’의 신앙으로 담대하게 신뢰의 길을 가야 한다. 비록 세상은 서로를 믿을 수 없다고 하지만 기독경영인은 신뢰라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세상을 충분히 이길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너의 선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벧전 2: 12)'는 말씀처럼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가치대로 행하면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

신뢰의 구성요소

기독경영에서 신뢰의 원리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거짓 없이 행하여 이해관계자들에게 믿음을 주는 원리’이다. 신뢰의 원리 속에는 세 가지 구성요소, 즉 진실성(trustfulness), 투명성(transparency), 일관성(consistency)이 있다.

◈진실성 
진실성이란 ‘기업은 모든 활동에서 이해관계자들에게 올바른 목적과 진심 어린 태도를 갖는 것’을 의미한다. 진실성은 올바른 목적뿐 아니라 올바른 수단도 중요하게 여긴다. 올바른 목적을 갖고 있어도 원하는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옳지 않은 수단을 사용하고 싶은 유혹을 물리친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존경받는 회사 중 하나인 톰스오브메인(Toms of Maine)은 자연과 인체에 무해한 순수 천연 원료만으로 제품을 만드는 친환경기업이다. 이 회사에는 30년 이상 일관된 가치관이 있다.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라. 환경에 득이 되는 일을 하라. 그리고 그런 일을 하기 위해 돈을 벌어라. 이것이 우리가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목표이다. 이것은 앞으로도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다.’ 1993년 천연 항균제인 이끼가 함유된 방취제를 시장에 내놓았는데 냄새가 좋지 않아 소비자 불만이 폭주했다. 그렇다고 굳이 리콜까지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창업자 채플은 “우리는 이윤이냐 가치관이냐 하는 도덕적 딜레마에 빠졌다”고 고백했지만, 결국은 고객들을 위해 그해 수익의 30%에 달하는 40만 달러의 손해를 보고 리콜 조치를 취했다. 

진실성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 혹은 가치를 정확하게 나타내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은 상거래를 할 때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신다(잠 11:1)’고 분명하게 말씀한다.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잠시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잠 12:19)’는 말씀은 현실의 기업 세계에서도 사실이다. 2015년 독일의 폭스바겐은 오랜 기간 배출가스를 남몰래 조작했던 사실이 발각되었다. 이 일로 인해 많은 나라로부터 소송을 당했고, 유럽연합(EU)에서는 37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벌금을 물어야 했다. 

r11.jpg어떻게 진실할 수 있을까? ‘땀을 흘린 분량만큼만 거두어야 한다.’ 이것은 기업경영에서 품질이나 원가를 속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가치를 따라 제품 가격을 매기는 것, 과장하여 광고하지 않는 것, 세금을 정직하게 내는 것을 모두 포함한다. 잠언 31장을 경영원칙으로 삼고 있는 미국의 주차빌딩 설계회사 팀하스(TimHaahs) 하형록 회장은 거래를 하면서 상대방으로부터 땀을 흘린 것보다 더 많이 받은 것은 ‘게을리 얻은 양식(잠 31:27)'이라고 단언한다. 회사 설립 2년쯤에 지역 공무원으로부터 불이 난 건물의 벽을 당분간 그대로 둬도 되는지에 대한 정밀진단을 요청받았다. 비교적 간단한 일이기에 시간당 75달러짜리 신참 엔지니어가 담당하기로 계약했다. 그런데 신참 엔지니어에게 사정이 생겨 시간당 100달러짜리 고참 엔지니어가 대신하면서 그에 해당하는 금액을 받았다. 두 달쯤 뒤에 이런 사실을 알게 된 하형록 회장은 과도하게 청구했다면서 더 받은 돈을 돌려주었다. 시간당 100달러짜리 돈을 받은 것은 정직하게 땀 흘리지 않고 ‘게을리 얻은 양식’과 같다고 보았기 때문이다.(계속)

류지성 박사(삼성경제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