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1.jpg막 12:42~44 여러 부자는 많이 넣었는데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랩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고,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첫째도 돈이요, 둘째도 돈이라고 답할지 모른다. 누구를 막론하고 돈을 떠나서 삶의 희열이나 기쁨 또는 행복을 얼마나 많이 느낄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돈으로 행복을 누리는 사람보다 돈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은 것이 우리 사회이며 현실이다.

돈의 위력은 세상의 모든 권력을 흔들 수 있는 미끼와 같다. 미끼만 좋으면 모든 것을 다 구할 수 있는 세상에, 미끼를 찾으려고 혈안이다. 바다나 민물에서 낚시를 할 때 어종이 좋아하는 식성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미끼에 따라 잡을 고기도 달라진다. 낚시도 어종에 따라 미끼가 다른데, 대부분 사람은 ‘돈’이면 해결된다. 바다낚시와의 차이점은 안타깝게도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등식이 성립하는 것일 것이다. 열등감의 최고의 진수성찬은 바로 ‘돈’이다. 돈으로 비교하는 것 자체가 이미 열등감의 시작이요, 열등감을 만드는 것이다. 돈 앞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드문데, 만일 돈 앞에서 올바로 설수만 있다면 그는 최고의 고수요 성공할 사람이다.

신앙심이 깊어질수록 더 많은 것을 드리고, 더 귀한 것을 드리고 싶은 헌신의 마음이 영적 성장의 증거이다. 그러나 영적 성장을 할 때면 이미 세상의 모든 물질은 더 이상 기다려 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 시기를 놓쳐버리고 오로지 돈 쓸 일만 남아있는 때가 될지도 모른다. 돈에 대한 열등감은 교회 건축을 할 때 최고로 심각해진다. 부자는 틈틈이 헌금을 많이 내고 교회에서는 끊임없이 홍보용으로 자랑하고, 주보 헌금자 명단에 액수까지 표기한다. 당연히 많이 내는 사람이 있어야지 성전도 건축할 수 있다. 주마다 명단을 확인할 때면 모든 사람은 자기 이름을 보면서 가장 많이 낸 사람을 찾기 마련이고, 또 가장 작은 액수를 약정한 사람을 찾는다. 그리고 나보다 적게 한 사람에 대해 ‘어떻게 이렇게 조금 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진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처럼 금액의 많고 적음보다 최선을 다해서 마음의 중심을 드렸냐 하는 것이 선택의 기준이다.

c13.jpg주보를 찾아보며 더 이상 자책하지 마라. 내가 헌금을 적게 약정했다고 누가 와서 욕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물론 많이 냈으면 주변 사람이나 목사님들이 칭찬할 것이나, 그 칭찬에 절대 교만하지 마라. 이미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는 순간 그 영광과 상급은 받은 것이다. 사람에게 칭찬받기 위해서 헌신했다면, 그것은 열 번 칭찬받아 마땅하다. 얼마든지 신문에 광고 낼 일이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오른손이 한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이 열등감을 극복하는 행복한 행동이다. 부자들은 풍족한 중에 엄청난 금액을 바치고도 먹고살 것이 있지만, 가난한 과부의 두 랩돈은 자기 생활비 전부를 넣은 것이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렘 17:9~10)

최원호 서울한영대학교 겸임교수, <열등감, 예수를 만나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