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jpg설 교 : 이선규 금천교회 목사
본 문 : 마태복음 2:8~11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마2:8~11)

성탄절 크리스마스는 천주교나 개신교를 막론하고 기독교 최대 명절로 지키고 있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고 축하 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일 것입니다.

유교도 그렇고 불교도 그렇고 이슬람교도 그렇고 모든 종교마다 종교의 창시자들을 존경 함 으로 그들의 탄생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의 성탄절은 그러한 날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기독교의 성탄의 의미는 쇠퇴하고 성탄절을 세상사람 들에게 다 내준 것 같은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전 4년 헤롯 왕 때 유대 베들레헴에서 탄생 하였다는 것은 잘 아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얼마의 세월이 흐른 후 동방 박사들이 별의 인도를 받고 예수님께 찾아와 경배 드렸다는 것도 많이 들어 본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시간 우리가 좀 더 주의 깊게 살피고 싶은 것은 예수님 탄생의 소식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서입니다.

본문 안에 세 가지 반응을 관찰할 수 있는데 헤롯왕과 종교 지도자들 그리고 동방 박사들의 반응입니다. 그들은 각각 적극적인 행동을 보임으로써 우리에게 매우 상징적인 교훈을 남겨 주었습니다.

1. 첫째로 헤롯의 반응을 보면 예수를 죽이려 했습니다.

3절에 ‘소동하다’라는 말은 두려움과 고통으로 도무지 마음을 안정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하는데 이는 헤롯 왕에게 유대인의 왕 예수가 태어 나셨다는 뉴스가 얼마나 큰 충격 이었는가를 잘 나타내 주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사실 헤롯 왕에게는 천성 적으로 남을 믿지 못하는 약점이 뿌리 깊게 박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의심과 불안은 병적으로 더욱 악화되어 자신의 왕좌를 넘본다는 의심이 조금 이라도 들게 되면 가까운 친척들까지도 무참히 죽였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는 말을 동방 박사에게서 직접 들었으니 제 정신이 있었을 리 만무 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그는 찾지 못하자 베들레헴에 군사를 보내어 2살 이하 어린 아이들은 보이는 대로 무자비 하게 학살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듯 광란하는 헤롯과 같은 사람들이 지구상에 얼마나 있었는지 모릅니다.

비록 그 정도로 악랄하지는 않지만 지금도 예수를 적대시하고 예수를 믿는 자들을 괴롭히고 미워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우리가 잊지 말 것은 마귀의 지배를 당하고 있는 이들은 우리의 구원자 예수를 미워 할 수밖에 없는 것과 헤롯의 후예들은 마지막 심판 날 까지 사라지지 않으리라 는 사실입니다.

헤롯이 왜 예수를 무엇 때문에 당황해고 소란을 피웠습니까?

헤롯이 아기 예수님이 태어 나셨다는 소식을 듣고 세속적인 임금이 자기를 몰아 낼 줄로 착 각 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기 예수가 자기의 경쟁자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기 예수님은 그런 정치적인 왕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구약 성경에 나타난 메시야시요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 하실 주님이시고 하늘나라를 보여 주실 메시아 십니다.

또한 내 삶의 모든 문제의 대답이 되고 생명의 주가 되시는 구주가 탄생하신 것입니다.

2. 두 번째로 종교지도자들의 반응을 보겠습니다.

그들은 한 결 같이 무관심한 자들 이었습니다. 적어도 구약 성서에 대해서 통달 하였고 그래서 수백 년 동안에 고대하던 메시야가 베들레헴에 탄생 하리라는 것 6절을 환하게 알았던 그들 이었지만 그러나 동방 박사들과 함께 예수께 경배하러 가지는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었을까요? 여기에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헤롯의 눈치 때문입니다 지체 높으신 분이 죽 이겠다 고 안달이 나 있는데 괜히 끼어 들다가는 어떤 변을 당 할런지 모릅니다.

둘째는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의 왕이 났다는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 우리는 맡겨진 일이나 하면 되지 자신들과는 상관이 없는 일로 생각한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이란 무엇 입니까? 예수님과 나와의 관계 즉 나와 예수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깊은 것 인가를 발견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변화를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당장 손안에 들어있는 권력에 집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들 나름대로 메시아가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났다 하더라도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2~30년이 걸릴 것이라는 계산을 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 이전에 죽을 자신들에게는 관계없는 일로 생각 했을 것입니다. 아무튼 그들은 성경은 알고 있었지만 예수를 만나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들 가운데 행여 이런 분은 신자는 안계십니까? 온 인류의 메시야가 탄생되었다는 소식에 조금도 마음이 열리지 않은 자 예수가 바로 나를 구원할 메시야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어도 여전히 등을 지고 있는 자 성탄 예배는 드리지만 축 제만 있고 주인공은 모르는 자 그 질문을 자신에게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를 축하 하러 온 동방에서 까지 와서 경배하러 가는데 그렇게 성경에 대해서 박사인 그 들은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그들은 정말로 하나님을 알고 그리스도를 아는데 그친 사람들 이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다니다 보면 종교적인 지식을 조금씩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이나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우리의 구주가 되신다는 것과 또 예수님이 만 인간의 구세주라는 사실이나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 이라는 것 정도는 잘 알게 됩니다.

[야고보 2:19]에는 네가 하나님은 한분이신 줄 믿느냐? 잘 하는 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고 했습니다. 악한 영 귀신이라도 하나님이 절대자이시고 전지전능 하시며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압니다. 악한 영이라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성경 말씀을 나의 삶에 얼마나 적용 하면서 살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 말씀의 지식을 얼마나 실천하고 순종 하면서 사느냐가 더 중요 합니다.

3. 세 번째로 동방 박사는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그들은 별을 보고 메시야 탄생을 알자 다른 일 다 밀쳐두고 먼저 그곳까지 가서 경배하기를 소원 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해서 예수를 메시아로 분명하지 않지만 왕이라는 것을 믿었다는 것은 대단한 신앙이라 하지 아니 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베들레헴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가 왕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경 배 드린 후 만족스럽게 돌아갔다는 것은 보통 수준의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이런 신앙 있습니까? 예수를 만왕의 왕으로 고백하는 믿음이 있습니까?
본문을 다함께 살펴봅시다. 예수님께 대한 칭호가 4가지 나오는데 2절 ‘왕’ 4절 ‘그리스도’시요 ‘통치자’ 6절 ‘목자’시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왕이십니다. 전 세계가 수백 년 동안 기다리던 의의 왕 평화의 왕 이십니다. 그러면 우 리는 왕이신 예수님께 어떻게 해야 합니까?

동방 박사들의 세 가지 행동을 본 받아야 합니다.

1) 그들은 먼 길을 마다 않고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우리 중에 아직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분들이 있습니까? 무엇보다 먼저 예수님을 찾고 만나십시오. 그리고 그가 그리스도이심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왕께 경배하려면 어떻게 경배해야 합니까?

겸손해야 합니다. 복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물을 드렸습니다.

황금은 동서고금을 초월하여 금은 귀한 것으로 여깁니다. 어렵다든지 경제가 불황 일수록 금을 사기 시작 합니다. 금은 그만큼 가치가 있습니다.

페르시아 에서는 황금을 가지지 아니 하면 왕에게 나갈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황금은 가장 귀한 가치를 의미 합니다.

가장 귀한 분에게 가장 귀한 것을 드리는 것은 당연 합니다. 그런데 금보다 귀한 것이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돈보다 신용을 잃으면 얼마나 큰 손실을 가져 오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신용과는 사람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믿음입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해결하는 열쇠와 같습니다.

우리 주님이 하시는 말씀 “네 믿음대로 될 지어다.”라고 하십니다. 믿음에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믿는 자 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믿음은 운명도 바꿉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래도 자랑스럽게 산 사람들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은 사람들은 한 결 같이 믿음으로 산 사람 들입니다.

우리 주님께 드려야 할 예물은 황금과 같은 믿음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또한 유향 입니다. 유향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는 제사장에게 드리는 선물입니다. 구약시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에 향이 없으면 안 되었습니다.
향단에 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필수라고 했습니다.

향이 있을 때 나비도 벌도 모입니다. 그런데 악취가 나면 사람들은 떠납니다.

아름답기는 한데 향기가 없으면 그것은 조화입니다. 주님께 드리는 예물은 사랑 이라는 유향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헌금 드릴 때마다 마음속으로 큰 소리로 사랑 합니다. 이런 말을 하 면서 드려 보십시오, 우리 주님이 기뻐 받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몰약을 드렸습니다. 몰 약은 죽음을 앞에 둔 자에게 드리는 선물입니다.

황금 이 믿음이요 유향이 사랑이라면 몰 약은 소망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바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길을 열어 주기위해 오신 예 수님만이 받을 수 있는 합당한 예물 이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드리려고 합니까? 주님은 우리의 선물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황금처럼 빛나는 믿음을 담으십시오.

유향처럼 향기로운 순결을 담으십시오. 몰 약처럼 썩지 않을 사랑을 담으십시오.

우리는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성도들로 예수님께 최고의 예물을 드리는 복된 성탄을 맞이 하 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황금보다 귀한 믿음을 드립시다.

영원히 변치 않는 유향의 사랑을 드립시다. 그리고 ‘영원한 소망으로 주님만 바라보며 살겠습니다’하는 믿음의 고백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늘 보좌를 내어 놓으시고 이 땅에 내려오신 주님께 가장 귀한 선물로 보답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성탄의 축복을 체험하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