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들의 지도체계와 개인숭배 사상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1945년에 독립된 후 북한은 공산주의의 길을 선택했고, 이후 1950년부터 1953년까지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UN 연합군과 싸워야 했다. 이러한 일이 있은 직후, 북한은 김일성이라는 한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명백한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고, 1994년에 그가 죽은 이후에는 아들인 김정일에 의해, 또 2011년 김정일이 죽은 이후에는 그의 아들 김정은에 의해 북한은 통치되었다.

북한은 기본적으로 두 사상이 존재한다. 하나는 ‘사람은 자급자족하는 존재이다’라고 외치는 ‘주체사상’이고, 또 다른 하나는 지도자들에 대한 숭배를 강요하는 ‘김일성주의’이다. 북한의 지도자들은 북한의 모든 부분을 이끌어가는 힘있는 집단이다. 그들 모두는 주 중 모임들에 참석해야만 하고, 100페이지가 넘는 사상 자료집(김일성 가문의 전지전능함을 찬양하기 위한 다양한 시와 노래들이 수록됨)의 내용들을 모두 기억해야만 한다. 또한 북한 전 지역에 대략 10만 개의 주체 연구 센터가 있다는 보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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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부터 북한의 개선문, 인민대학습당, 평양의 주체탑.  사진제공=오픈도어선교회
김정은의 세습

최근에 이루어진 김정은의 정권세습은 북한의 사상과 꼭 들어맞는다. 그의 리더십은 그의 아버지의 것과는 다른 할아버지의 리더십과 좀 더 닮아 있다. 그는 좀 더 대중에게 다가가고, 좀 더 대중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려 한다. 하지만 이것은 사상 자체가 덜 중요해졌다거나 지도력이 분산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김정은은 “위대한 계승자”로 칭송되고, “위대한 지도자”, “군대의 위대한 사령관”으로 불린다. 좀 더 중요하게는, 그가 북한의 노동당 최고의 비서로서 모든 중요한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개혁의 길을 선택하면서 북한에 희망이 조금 보이는 듯했으나 2012년부터 2013년까지 경제개혁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이러한 희망조차도 사그라지고 있는 현실이다. UN은 북한에 대해 제재를 가하고, 미군이 남한과 공동 군사 훈련을 한 이후 김정은은 여전히 두 번의 로켓 발사와 한 번의 핵실험을 자행하기도 하였다.

모든 삶에 중요한 부분인 사회 계층 구분

중국 윤리와 철학 사상인 유교에 영향을 받은 북한은 사회의 특정한 계층으로 모든 시민을 구분하였다. 이것은 주민등록 관련 파일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이 시스템은 ‘성분’이라 불리는데 이것은 사회 계층을 3개로 구분한다. 핵심계층(핵심군중), 동요계층(기본군중), 적대계층(복잡군중)이다. 이 중 첫째 그룹인 핵심계층(핵심군중)은 북한 전체 인구의 28%를 차지하며, 둘째 그룹인 동요계층(기본군중)은 45%, 셋째 그룹인 적대계층(복잡군중)은 2%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이 계층 구조는 51개 부류로 세분화되었다. 북한 내에서 이러한 성분에 대한 조사는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가장 최근에는 2010년에 조사되었다. 게다가, 하부 계층 구조는 계속적으로 변화를 가하고 있으며, 한 사람이 타고난 성분을 위로 올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러한 북한의 성분에 대해 최근 발표된 보고서는 ‘정해진 인생(Marked for life)’이라 이름을 정했는데, 이는 전혀 과장되지 않은 것이다. 성분은 음식분배 시스템에도 사용된다. 더 높은 성분의 사람들, 특히 평양에서 사는 사람들은 충분히 먹는다. 그에 비해 낮은 성분의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다. 또한 재판을 받을 때도, 더 낮은 성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보다 더 중한 형을 받게 된다. 따라서 북한에는 법의 원칙이라는 것이 없다. 성분은 결혼을 할 때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더군다나 성분은 연좌제(범죄자와 일정한 친족 관계가 있는 자에게 연대적으로 그 범죄의 형사 책임을 지우는 제도)의 원리에 따라 더욱 악화한다. 즉, 할아버지의 후손들에게까지 할아버지의 범죄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북한 정권이 가장 높은 순위에 오르는 것을 정당하게 만든 제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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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부터 북한 상류층이 이용하는 가전제품 가게, 북한의 호텔 앞에 주차된 고급 승용차들.
  사진제공=오픈도어선교회

최악의 경제 상황

북한은 자연 재해의 높은 위험에 직면해 있는 국가이다. 실제로 북한에서는 폭우, 태풍, 홍수, 돌풍 등이 매년 발생하고 있고, 토양 침식과 퇴적, 산사태, 가뭄, 모래바람 등이 주민들의 삶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UN 보고서는 약 1,600만 명의 주민들이 음식 불안정과 높은 비율의 영양실조, 깊이 뿌리내린 경제 문제들로부터 고통을 당했다고 보고했다. 어린 자녀들, 임산부, 수유하는 여성들, 노인들이 특히 이러한 고통에 심각하게 노출되어 있다. 북한은 국제적인 원조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이러한 도움조차도 궁핍한 주민에게 제공되는 과정을 북한 정권이 통제하기에 새로운 문제들을 야기시키게 된다.

부패

북한의 또 다른 문제는 군인들이 원조받은 것들을 분배하기는커녕 돈을 받아 팔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부패의 커다란 단면을 보여주는 예이다. 국제투명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에 따르면, 북한은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부패한 국가이다. 2009년 11월, 그 어느 누구도 시장에서 판매되는 상품들을 살 수 없게 되면서 북한 정권이 실시한 통화정책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다. 이것은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삶의 터전을 떠나도록 만들었고, 지금도 소비자 물가는 매주마다 치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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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꽃제비들.     사진제공=오픈도어선교회
전 세계로부터 정보가 유입되다

전 세계로부터 다양한 형태로 정보의 흐름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 정보의 흐름 속에 전 세계의 뉴스뿐만 아니라 외국 영화, 남한 TV 드라마를 보고 들을 수 있는 라디오나 DVD가 북한으로 들어가고 있다. 북한 정권은 여전히 사람들의 지식을 통제하고자 하지만 이러한 통제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사실상 북한 내에서 인터넷 접속은 어렵다. 하지만 약 100만 명의 사람이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다. 이것으로 인터넷 접속은 하지 못하지만 국경 20km 안에서는 중국 방송국에 접속할 수 있다. 또한 국경에 사는 많은 사람이 중국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엄격하게 감시되지만 무언가에 접속하는 것들은 막을 수 없다. 2010년, 탈북자들과 북한으로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는 27%의 북한 사람이 자국 내에서 외국 라디오 방송을 듣고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또한 24%의 사람이 중국과 남한의 TV 프로그램들을 보고 있다는 것이 조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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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시골 풍경.      사진제공=오픈도어선교회
북한교회의 실상과 역사

18세기 말, 중국에서 복음을 영접한 한국 사람들이 자신의 나라로 기독교를 가져왔다. 1886년, 북한에 영구적으로 정착한 최초의 선교사들은 이미 그곳에 소규모 기독교 공동체가 있음을 알고, 일 년 후 한국어로 된 성경을 처음으로 발행했다. 1905년(공식적으로는 1910년), 일제에 의한 한일합방은 한국의 신자들로 하여금 엄청난 성장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고, 기독교는 자국의 민족주의를 지지했다. 평양대부흥 운동이 1907년에 시작되면서 평양은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곳곳마다 교회가 생겨나면서 수많은 부흥사경회가 있었고, 선교사들은 전국 곳곳에 교육기관을 설립했다.

그러나 일본의 지배하에서 교회는 갈수록 핍박을 받았고, 기독교인들과 일반 시민은 신사 참배를 강요받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한 후 김일성이 정권을 장악하였고, 그는 공산주의(무신론) 정권을 도입했다. 6.25 전쟁이 일어나는 동안(1950~1953년) 많은 기독교인이 북한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했다. 전쟁이 끝난 후 북한에 남아있는 수만 명의 신자가 죽임을 당하고, 감옥에 수감되거나 오지로 추방당했다. 그나마 남아있는 교회는 지하로 숨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전쟁 전, 북한에는 50만 명에 달하는 신자가 있었으나 십 년 후에는 그들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2001년 이후, 전미국제종교자유위원회(the United States Commission on International Religious Freedom)는 북한을 특별관심대상국으로 여기고 있으며, 2012년 최근 보고서에서도 그것을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종교자료보관협회(ARDA, the Association of Religion Data Archive)는 “전통적으로 불교와 유교에 가장 많은 신자가 있으나 북한 정권이 모든 종교를 뿌리 뽑기 위한 시도에서 대단히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오픈도어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기독교인 수에 대한 추정은 약 3만 명부터 수십만 명까지 상황에 따라 다르다. 물론 매우 제한적인 환경으로 인해 어떠한 수치를 정확하게 확인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북한 내부 정보를 바탕으로 오픈도어는 기독교인의 수를 좀 더 높게 보고 있으며, 그 수를 20만 명에서 40만 명 사이로 추정하고 있다. 어떤 수치를 사용하건 북한에 대한 전반적인 해석은 북한 교회가 천천히, 그렇지만 꾸준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수도 평양에는 공인된 가톨릭 교회 한 곳과 개신교 교회 두 곳이 있으며, 2006년부터는 러시아 정교회도 함께 자리 잡았다. 1998년부터 김일성 대학에서는 종교학을 가르치고 있다. 졸업생들은 비밀리에 이루어지는 종교 활동을 찾아내기 위해 공인된 종교단체, 해외 무역 부문 또는 국경 수비대에서 일하고 있다. 북한 내의 기독교 활동을 고발하기 위해 간첩으로 채용된 수는 상당하다.

오픈도어선교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