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1.jpg빌립 집사의 네 딸 모두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는 경건함에 숭고함을 느낀다(행21:9). 바울 사도는 독신으로 살면서 당당히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한다’(고전7:7)는 당부를 서슴없이 말했다. 더 좋은 길을 가라고 가르치면서 처녀가 결혼하는 것도 잘하거니와 하지 아니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라(고전7:38) 말했다. 과부의 경우도 같은 입장을 취했다(고전7:40). 이유는 닥쳐올 환난 때문이고, 결혼한 자는 어떻게 남편을 기쁘게 할꼬 하는 생각으로 주님 섬김에 대한 마음이 분심(分心)되기 때문이다. 결혼을 귀히 여기라(히13:4)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하나님께로 받은 은사가 있으니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다는 여유를 두면서도(고전7:7), 주님 섬기는 마음이 갈라지지 않기 위해서였다(고전7:35). 바울은 다급했다. 예수 없이 지옥에 뚝뚝 떨어지는 생명을 영안으로 보았기 때문에 격분한다. 잔인한 마귀와 싸우는데 결혼할 틈도 없는 거룩한 분노였다.

수도자는 세상도 가정도, 자기마저 버리는 산 채로 순교자의 길을 걷는 자다. 곁을 볼 수 없는 결사적인 선택을 자원한 자들이다(엄두섭). 동남동녀(童男童女)로 그리스도께 중매되어 그리스도의 영적 정배(淨配, 정결한 신부)로 깨끗한 영혼과 마음, 육신을 지키려고 목숨을 걸고 싸우는 자다(버나드). 백합처럼 아름다우면서도 강철처럼 강한 지조를 가진다. 음란으로 치닫는 혼탁한 세상을 정화시키려 순결을 퍼 올리는 펌프들이다. 배불리 먹은 배는 간음을 일으키지만 억제하는 위는 순결로 인도한다(요한 클리마크스)고 말하면서 이들은 절제와 금욕생활까지도 겸했다.

수가성 우물가 여인의 남자는 네 남편이 아니라 했다(요4:18). 단지 시한부 동거인일 뿐이었다. 나는 네 남편이라(호2:16) 말씀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남편을 빼앗아 가시려고 하신 말씀일까. 진젠돌프 백작은 모든 남편은 대리남편이라 했다. 영원한 소망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고독을 사모하고 환경을 사막화하면서 주님 가슴에 매달려 집중했던 거룩한 성자들을 통하여 인류에 기쁨의 샘이 흘러내린 연유를 알아야 한다.

“예수님께 안 배우면 일천 년을 보아도 시끄럽다. 예수님은 따르라 했는데 사람들은 알려고만 한다.”(이세종) 외친다. 행복하려고 예쁜 처녀와 결혼하는가? 외로움에서 탈출하려고 남자 품에 안기는가? 어림도 없는 소리다. 독신 그리스도인들이여! 지금 신랑 되시는 예수님께 푹 빠져라. 기회가 허락된다면(서약 안 한 자) 당당히 결혼하라. 결혼해도 죄짓는 것이 아니다(고전7:28). 단 오늘의 이 독신의 시간을 최고의 순간으로 삼아라. 주님께 통째로 드려 알뜰히 섬길 수 있는 황금기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기뻐하라. 결혼에 대한 막연한 부러움을 가지고 낙담하며 스스로 불쌍한 처지로 자신을 비하하지 마라. 마귀가 몇 천 년 동안 쳐놓은 거미줄에서 뭍 생명들을 빼내오는 긴박한 구출사역에 주님과 동맹을 굳게 하라.

제3의 재속수도자들이 되어 가정을 이루면서도 성복을 입고 거룩한 길을 걷는 자들도 많다. 결혼한 부부들의 고독을, 그 갈등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싱글들은 이해하기 힘들다. 이혼에까지 몰려야 하는 그 상처, 하늘과 땅처럼 넓은 남녀 간의 이견 차로 인한 벅찬 고충과 배신감, 그리고 그 외로움, 예수님 아니고는 메울 길이 없음은 기혼자나 독신자 모두의 배당이다. “신학교 때문에 예수 바로 못 믿고, 목사 때문에 예수 바로 못 믿고, 가정 때문에 예수 못 믿는다”(강순명)는 의미심장한 일침도 새겨야 할 숙제다. 지금 환경, 그곳에서 당장 주님의 거룩한 신부가 되어라. 천추만대 찌들은 숨은 정욕의 들판을 그의 피로 씻는 작업을 하라.

산 밑의 거인보다 산 위의 난쟁이가 더 멀리 보는 법이다. 차원을 높여라. “그리스도를 본받아 성화완성에 정진하고 완덕(청빈, 순결, 순종)에 이르도록 결심합니다.” 수도자의 서약 일부다. 할렐루야!

이동휘 목사(전주안디옥교회 선교목사, 사단법인 바울선교회 대표이사)

바울선교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