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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의료사역팀이 필리핀에서 치과 진료를 하고 있다.
NCOWE 대회에서 발표된 자료를 보면서 한국인 선교사는 2만 5천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렇지만 참석자들 대부분은 선교는 위기 상황이라는데 의견이 일치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한국교회의 침체 때문입니다. 선교는 교회와 함께 가기 마련입니다. 교회에서 사람이 길러지고, 교회가 파송하고, 교회가 재정과 기도로 지원함으로써 선교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개신교인의 수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위기 상황을 몰랐나

부산에서 출발할 때, 어디로 가느냐는 질문에 ‘서울 간다’고 하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지만, 고속터미널에서 내렸을 때 어디로 가느냐는 질문에 ‘서울 간다’고 하면 말이 되지 않습니다. 교회가 성장해야 된다고 말하는 것도, 초기 상황에서는 수용될 수 있지만, 개신교도가 10%가 넘어갈 때에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은 문제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1990년대에 극독방송의 선교프로그램에서 선교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교회가 건전하게 성장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십자가만 꽂으면 사람들이 몰려들던 시기에 주요 구호는 ‘믿어라, 돈 내라, 집 짓자’라고 설파하던 목사님도 있었습니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라고 해도 본질에 집중하지 않으면 문제가 될 수 있는 구호였던 것입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라고 해도, 정확하게 개념이 세워지지 않으면 결국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입니다. 교회는 예배당이 아닙니다. 그런데 예배당을 지어놓고, 교회라는 간판을 달기 때문에 혼돈이 생깁니다. 예배당을 건축하는 것은 성전 건축이 아닙니다. 예배당은 필요하지만,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하면 진짜 성전인 성도들을 주 안에서 세우는 데 실패하게 됩니다. 선교지에다가 예배당을 지어놓고서는 ‘교회를 지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성경적으로 온전한 말은 아닌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없는데 예배당만 덩그러니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교회 성장이란, 성도를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사람으로 양육하고 훈련하는 것인데, 건물을 짓고 확장하는 것을 교회 성장이라고 혼돈했습니다. 급기야는 수백억의 예배당을 지으려고 하다 부도가 나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비일비재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부여받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땅에서 악의 세력이 창궐하고 성도들을 핍박하고 죽이기까지 하고 있지만, 일시적으로 허용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악의 세력에 대항하여 싸우고 죽인 것이 아니라, 도리어 고난을 당하고 무죄하다는 것이 판명 났음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 죽으신 길을 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음부의 권세가 주님의 교회를 이기지 못하였기에 순교의 피를 따라 계속 복음은 확산되었습니다.

장사하는 집을 허물고 본질을 회복해야

예수께서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과 소를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으로 쏟으시고 상을 엎으셨습니다. 그리고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이에 항의하여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고 질문하자,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하셨습니다.(요2:13~19 요약)

예수님의 교회는 정치권력이나 돈의 힘으로 세워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중세 교회사를 통해 다시 깨달아야 합니다. 면죄부를 팔았을 때, 처음부터 그렇게 돈을 끌어모을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교회의 위엄을 보이기 위해서, 건물을 화려하고 멋지게 지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실행에 옮기면서 문제가 시작되었습니다. 베드로 성당을 무려 150년이란 기간에 걸쳐 지었고, 그 막대한 건축비를 조달하기 위해서 모든 수단을 강구하다 보니 무리한 일도 벌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배당을 크게 지음으로써 교회의 위엄을 나타내려고 하는 것은 중세 교회 때 이미 해보았던 실패작입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자기를 드러내고자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본질적인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 외모로 판단하게 되지만, 하나님은 결코 외모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하고, 성전 건축을 잘 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하며, 건축 헌금을 무리하게 거두면서 진짜 교회인 성도들을 건전하게 가르치고 건강하게 기르는 데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나 본질을 회복하고 진리를 향하여 돌이키면 소망이 있습니다.

제자 양성보다 교회 건축이 중요시돼

전문인 선교의 위기를 추적해 보면, 교회가 본질을 잃어버린 데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선교는 제자들에게 주어진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거듭난 자들의 모임으로서 제자로 부르심 받은 자들이며, 참 제자로 자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을 기르는 것이 진정한 교회의 성장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아닌 예배당에다가 교회라고 간판을 걸고 예배당을 꾸미고 화려하게 짓는데 몰두하다 보니 땅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할 제자들은 길러지지 못한 것입니다.

전문인들이 선교하려고 헌신한다고 해도 제자의 삶이 결여되어 있고, 제자의 삶을 산다고 해도 이들을 파송할 힘이 없다는 것이 위기의 본질입니다.

안디옥 교회의 설립

성령께서 행하신 일을 안디옥교회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신학적 전문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함께하시자 많은 사람이 주께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은혜 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 신학적 전문가인 바울이 청빙 되어 그들을 돌보았던 것입니다.

선교지에서도 처음부터 신학적 전문가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제자의 삶을 사는 전문인, 평범한 직업인들이 그들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우상두 장로(치과의료선교회 전 대표)

선교타임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