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e Mission 이재환 선교사의 '미션 파서블'

제2부 Mission Possible
14과. 바울과 고난

ljh.jpg바울을 통해 고난은 특별한 사람만이 당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파하는 모든 사람이 치루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선교는 순교라는 등식이 만들어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선교는 고난 신앙의 결정체이다. 성경은 아담의 첫 아들 아벨이 피흘림으로 순교의 제사를 드린 사건부터 츨발한다. 하나님은 진리를 위해 피 흘림을 막지 않으셨다. 수 많은 선지자들과 하나님의 사람들이 순교의 피를 흘려왔다. 구약시대를 통털어 피의 제사가 오랫동안 진행되어 왔다. 선교의 역사도 피의 역사이다. 터툴리안이 말대로 순교의 피가 교회의 씨앗이 되었다는 말이 정확하게 증명되었다.

 수도 셀 수 없는 사람들이 피를 흘림으로 현대의 기독교가 만들어 지고 있다. 지금까지도 대부분의 나라들이 복음 전파를 막거나 허락하지 않고 있다. 현대에도 여전히 곳곳에서 순교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주님의 때가 가까이 올 수록 순교의 신앙으로 더욱 무장해야 할 것이다. 순교자의 숫자를 채우는 것이 주님의 도래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롬8:17,18)
   
선교와 고난 
바울은 이미 그가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났을 때 이미 주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고 선언했다.(갈2:20) 그는 날마나 죽노라고 선언하므로 마음의 사형선고를 내렸으며 살아있는 제물이 된 것을 선포하고 권면하였다.(롬12:1) 때로는 살 소망이 없다고 말하며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다.”(고전 4:9) “주리고 , 매맞으며, 목마르며, 헐벗고 정처가 없고 모욕과 박해를 받고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같이 되었도다.”(고전 4:11-13) 라고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였다. 또한 “옥에 갇히고 매도 수없이 맞고(195대) 세번 태장으로 맞고 세번 배가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음에서 보내고 강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의 위험, 광야의 위험, 바다의 위험, 거짓형제의 위험, 수고하고 애쓰고,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며, 굶고 , 춥고 , 헐벗었노라.”(고후11: 23)고 고백하였다. 선교는 고난을 수반하는 사역임을 보여 주었다. 주님은 마태복음 10장에서 “어린양을 이리가운데 보내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선교는 결코 평안하고 쉬운 길이 아니다. 

선교와 상급
바울은 장차 받을 상급을 생각하며 인내하며 고난을 영광스럽게 생각하였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딤후4:7, 8)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롬8: 17, 18).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의거하면 이기는 자에게 주는 상급들이 환난을 이기는 힘이 된다. 그리고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고 하셨다. 이 소망이 우리를 강건케 한다.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바울은 고난, 고통 가운데서 원망을 하지 않았으며 그것을 자랑하지도 않았다. 넘치는 겸손과 기쁨으로 이방인 선교에 매진했다. “나를 본 받는 자가 되라.”(고전4:16), “약한 것을 자랑하노라.”(고후11:30), “사도의 표인 인내와 표적, 기사와 능력을 행했다.”(고후 12:12), “구할 것은 충성이다.”(고전4:1, 2.) 등등의 고백으로 온전하고 성숙한 선교사의 모습을 끝까지 지켰다. 영원한 우리의 모델이며 샘플이 된다.

순교와 선교
증인이 되는 것이 순교자 Martus(Martyre).이다. 스테반의 순교, 야고보의 순교, 12제자들의 순교, 바울의 순교, 수도 셀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순교했다. 요한계시록은 순교의 숫자가 채워질 때 주님의 오심을 알려 주고 있다. 환란 앞에 인내하며, 충성 중에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영광스러운 소망으로 사는 자들이 순교에 참여할 수 있다. 바울은 끝내 로마에서 참수당하므로 순교로 선교의 사역을 마친다. 그러나 그의 순교의 피가 오늘날의 기독교의 씨앗이 되었다. 순교는 선교의 꽃이다. 순교는 희생의 아름다운 열매다. 순교는 최고의 아름다운 제물이다. 순교는 영광스러운 축복이며 아름다운 사역이므로 순교자의 행렬이 이어지는 것이다. C.T Studd는  “만일 그리스도가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그가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다면 우리가 행하는 어떤 것도 희생일 수 없다”고 말했다. 순교가 있으므로 우리의 복음과 선교가 가장 값지다는 것을 증명한다. 생명을 걸지 않는 것은 가짜이기 때문이다.

선교는 특권이다.
바울은 선교는 특권이며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고난도 선교를 막을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