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pg바울이 위대한 것이 아니다. 그를 사용하신 하나님이 위대한 것이다.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후 기독교의 창시자라고 불리울 만큼의 위대한 진리를 깨닫고 이방의 선교사로 자신의 사명을 이루었다. 사도중의 사도인 바울을 통해 일하신 주님의 마음을 아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다.  바울은 ‘이방인의 그릇’으로 부름을 받았다. 그의 부르심의 목적이 이방 선교이었기에 바울은 선교에 목숨을 걸었다. 그래서 선교를 이해하면 바울이 보이고 바울을 이해하면 선교가 보인다. 바울의 신학과 신앙은 선교이다. 바울의 삶은 모두가 선교이다. 그가 집필한 13권의 성경은 모두 선교의 책들이다. 바울의  삶의 목적은 이방인 선교와 이스라엘의 회복이었다. 그의 선교를 향한 애끓는 고백은 사도행전 20장 24절과 로마서 12장 1절에서 보게 된다. 바울은 어떻게 이런 놀라운 선교의 비밀을 깨달을 수 있었을까?

선교는 미스터리다

신약 성경에는 27번의 미스터리(Mystery, Musterion)라는 단어가 나온다. 주님이 천국을 말씀하실 때 한번 사용하셨고 (그러나 신약성경에는 같은 의미로 사용되어 3번 번복된다.) 요한이 계시록에서 4번을 사용했다. 이 미스터리라는 말은 헬라어의 musterion으로 아주 깊은 진리를 말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놀랍게도 바울이 유일하게 이 비밀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하였다. 그외 다른 성경에는 없는 단어이다. 바울이 주님께 나와 회심을 하고 사도가 되어 선교사의 삶을 살게 된 것 자체가 엄청난 미스터리이었다. 바울은 이런 이유 때문에 선교는 비밀이라는 것을 20번이나 사용했던 것이다.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엡3: 1-9) 그리스도의 비밀,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낸 일,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이 비밀이었다.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는 것, 즉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이제는 나타난 것이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었다.(엡 3:9) 이는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케 하는 복음으로 구약의 선지자들이 말했던 그 글속에 숨겨져 있던 비밀이었다.(롬 16: 25)이 비밀을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롬 11: 25절), 이방인의 충만한 숫자의 비밀, 유대인의 회심, 모든 이스라엘의 구원, 그리고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 졌던 일 (골1:26) 이며 이 비밀은 그리스도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풍성하게 나타나는 일이었다. 비밀의 신비함은 선교로만 풀이될 수 있다.

바울은 선교를 직접 계시로 받았다. 

갈라디아서 1장 11-12절에서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바울의 선교의 계시는 직접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다메섹에서 받았던지 아니면 아라비아 광야에서 지낸 3년 동안에 받은 것인지는 모른다. 그래서 그는 선교의 비밀이 과거에는 숨겨져 있었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다른 사도들이 사용하지 않는 단어인 비밀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교란 복음을 받았다고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깨달음이 있어야 이해가 되는 영역이다. 바울은 ‘이방인의 선교사’(행 9: 15) ‘종과 증인’ (행26: 5) 그리고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다. 그러므로 선교사로서 바울을 이해 하지 못하거나 바울처럼 선교하지 않는다면 바울을 바로 이해하기 어렵다. 이방인 때문에 바울이 존재하는 것이지 바울 때문에 이방인이 있는 것이 아니다. (행23: 11) 하나님이 바울을 로마로 보내었다.

바울은 자신의 선교사 사역을 영광스러워했다.

바울은 이방인 선교야 말로 하나님의 성품인 영광에 참예하는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롬11:13) 이방인의 선교사역이 그는 영광스럽다고 고백한다.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임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엡3: 8, 9) 라고 고백한다. 이처럼 복음의 비밀을 깨닫고 복음의 권위와 가치를 계시받은 후 생명을 다하기까지 오직 선교에만 매진하게 되었던 것이다. 바울은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했다. 고린도전서 4장 9절이하의 말씀을 보면 “다할 수 없는 고난 가운데서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사는 것 보다 죽는 것”을 더 사모했기 때문이다. 바울을 바울 되게 한 것은 하나님의 비밀을 알 수 있었던 특권 때문이었다. 선교는 영광스러운 일이다. 이 보다 더 영광스러운 일은 없다. 바울의 진정한 꿈은 스페인을 가는 것이었다. 그의 선교의 열정으로 인해 바울은 기어코 스페인에 갔을 것이다. 그 후 그는 돌아와서 로마에서 순교하였다. 그의 피는 결국 로마를 선교의 가장 중요한 기지로 만들게 하였다. 바울의 신앙고백과 재림의 소망이 이런 고백을 하게 하였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 (고전1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