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선교의 현 위치를 점검하고, 지향점을 찾아 그를 향해 나아갈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한국교회의 선교 네비게이션 2010”란 주제로 ‘한국교회 8.15 대성회 세계선교 옴니버스 토론회’가 열렸다. 13일(금) 오전 10시부터 서빙고동 CGN TV 스튜디오에서 열린 이번 행사는 “한국선교의 주춧돌 : 자율화” “한국선교의 디딤돌 :  현지화” “한국선교의 물맷돌 : 세계화” “한국선교의 다듬잇돌 : 동반화” “북한선교와 북한교회 선교동력화” 등의 주제로 발제와 대담이 이어졌다.

다음은 “한국 선교의 디딤돌 : 현지화 - 선교현장의 현지화 사례”란 주제로 발제한 김병선 선교사(GP)의 발표이다. 이 세션에서는 한국선교의 현지화 사례를 짚어보고, 선교현장에서의 현지화 방향을 모색했다. 김병선 선교사 외에도 이덕주 교수(감신대)가 한국선교의 현지화 사례에 대해 발표하고, 이우윤 목사(중국대학선교회 선교연구소장)가 선교 현지화 방향에 대해 발제했다. (토론회 관련기사)

kbs.jpg저는 1985년에 인도네시아의 남부 수마트라에 있는 단중에님 신학교에서 교수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주 중에는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주말에는 주위의 자바인 이주민 지역에 신학생들을 보내 교회를 개척하게 하고 그 교회들을 돌보는 사역을 했습니다. 한국교회의 부흥이 널리 알려져 있는 상황이라 단중에님 신학교에서 ‘교회성장학’을 한국인 선교사인 저에게 가르치도록 부탁했습니다. 여러 가지 교회 성장의 요인들을 강의했습니다. 그 중에 한국교회는 기도를 통해 – 특별히 새벽기도회와 철야기도를 통해 – 부흥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기에 기도의 중요성도 강의했습니다.

1988년 말 인도네시아선교회(Indonesian Missionary Fellowship)의 연례회의에서 교회개척의 방향을 계속 자립이 안 되는 정글 교회에만 하지 말고, 도시에 우선적으로 교회를 개척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남부 수마트라의 경우 가장 중요한 도시는 주청 소재지인 팔렘방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팔렘방에 교회를 개척하겠다고 나서는 분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단중에님에서 팔렘방으로 이사해 1989년 1월 22일 첫 주일예배를 드림으로 GOP교단의 팔렙방 교회를 시작했습니다.

팔렘방시와 신학교가 있는 단중에님은 차량으로 4시간 거리에 있습니다. 월요일과 화요일은 단중에님 신학교에 가서 강의를 하고, 수요일부터 주일까지는 팔렘방교회 사역에 집중했습니다. 1989년 한 해 동안 열심히 노력했지만, 교회 성장의 속도는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다음은 당시 기도편지의 내용입니다.

“팔렘방의 새 교회는 40여 명의 장년 교인과 30여 명의 주일 학생들이 새로 모신 교역자인 엘리 전도사와 예니 전도사를 중심으로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감사한 것은 평신도들이 스스로 교회의 주인으로 사역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직 예배 처소가 없어서 저희 집에서 계속 모임을 갖고 있는 형편입니다” (1989년 9월 1일 기도편지에서 발췌)

새벽 기도회와 철야 기도회

저희 집에서 모이던 모임을 10월 15일 주일부터 르마방이라는 지역에 장소를 세내어 예배 처소를 옮기게 됐습니다. 그 주일에 장년 55명, 주일 학생 30명이 모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11월 20일부터 25일까지 인도네시아 수도인 자카르타에서 조용기 목사를 주강사로 하는 교회성장 세미나가 열려서 통역 부탁을 받고 참석했습니다. 저는 동경에서 강사로 오셨던 이강헌 목사의 특강을 인도네시아어로 통역했습니다. 이 세미나에서 강조된 것이 기도였습니다. 이 교회성장 세미나를 마치고 돌아와서 다음 주부터 팔렘방교회 새벽기도회를 시작했습니다. 다음은 그 때의 기도편지입니다.

“저는 이 일을 위해 평신도를 개발, 지도하는 방법을 목회자들께 강조하고 가르치고, 저 자신이 직접 관계된 교회에서는 적극 평신도의 사역참여를 실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1월에 시작한 팔렘방 교회는 현재 70여 명의 장년 교인이 모이는 교회로 성장했는데, 금년 말까지는 100여 명이 모이는 교회로 성장할 것입니다” (1989년 11월 30일 기도편지에서 발췌)

1989년 1월 1일 저는 신년축하예배를 드리면서 요한복음 14:12~17을 본문으로 “더 큰 일을 이루자”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주님께서 그 내용을 시행하심으로 우리가 예수님께서 하셨던 일을 그대로 할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설교하고, 새벽기도에 성도들이 더 참여하기를 독려하고, 그 해의 교회성장의 목표를 1,000명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당시 주일학생을 포함해 전 교인이 100여 명이었습니다.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는 교인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교인수가 급진적으로 늘어났습니다. 다음의 기도편지 내용이 그 과정을 보여줍니다.

“지난해 1월 시작한 팔렘방시의 교회가 계속 부흥됨에 따라 두 곳에 예배 처소를 더 준비해, 세 곳에서 주일예배를 드리며, 주일 오후에는 연합 예배를 매주 드리기로 했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기도의 응답으로 정성 어린 성도님들의 승리입니다. 금년 저희 교회의 성장목표는 세 교회를 합해 1,000명의 영혼을 얻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이번에 졸업한 전도사님들 중 4분을 더 모셔서 모두 6명의 전도사님들이 팔렘방 교회에서 저와 더불어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모두 열심 있는 기도의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매일 교대로 새벽 기도회를 인도하며, 주일예배, 여전도회, 청년회, 주일학교, 찬양의 밤, 철야 기도회 모임 등을 인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주일 새벽예배, 주일 오후 연합 예배, 교역자 목요 기도회 등을 인도합니다. 오늘 새벽에는 30여 명이 새벽 기도회에 참석했습니다. 한국 교회의 부흥이 인도네시아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1990년 2월 24일 기도편지에서 발췌)

“팔렘방의 교회는 세 곳의 예배 처소에서 각각 활발히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주일 아침 예배는 각각 드리고, 오후에는 연합예배를 드립니다. 연합예배는 부흥회 형식으로 제가 직접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매일 새벽 기도회를 갖고, 그 외에는 매주 한 번씩의 집회로는 청년회, 여전도회, 찬양의 밤, 금요 철야 기도회, 영어 성경공부 등이 있습니다. 주일학교는 각 예배처소별로 주일 아침과 수요일 오후에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저희 팀은 (저와 4명의 남전도사, 3명의 여전도사)모두가 지치도록까지 열심히 일하고 있으나 심령의 새로운 활기를 계속 경험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감사한 것은 이 전도사들이 여러 면으로 성숙되어지는 것을 볼 수 있는 사실입니다. 찬송인도, 말씀강론, 기도인도, 심방 등에서 이들의 발전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에는 제가 없어도 이들에 의해 사역은 계속 발전되고 성장되어질 것입니다” (1990년 4월 19일 기도편지에서 발췌)

“1,000명의 영혼구원! 이것이 금년 저희 팔렘방 교회의 목표입니다. 할렐루야! 주님은 지금 이 일을 이루고 계십니다. 지난해 개척을 시작한 저희 발렘방 교회는 현재 4개의 교회로 나누어서 예배를 드리고 있으며, 금년 중에 50개의 소그룹 형성을 통해 1,000명의 영혼구원은 이뤄질 것입니다. 아이들을 포함해 20명 가량씩 모이는 작은 모임들이 주1회씩 평일에 각 교인의 집에서 집회를 갖고, 주일에는 교회에 모여서 예배를 드립니다. 물론 평신도가 예배를 각각 인도하나 필요와 요구에 따라 전도사들이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6월 셋째 주 현재 400명 이상이 모이고 있습니다. 함께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주님께서 제자 삼으려고 노력하는 성도들에게 약속을 지켜주고 계십니다. (마28:18~20) 새벽 기도회를 그간 선교회 소속 주택에서 모여왔으나, 이번 주간에는 회집인원이 40명 이상으로 모두 수용할 수 없어서, 두 곳으로 나누었으며, 네 교회 중 두 곳의 경우 주일에는 장소의 협소함과 의자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에 있습니다. 금년 초에 100여 명의 교인을 갖고 있을 때 금년에 교인이 1,000명으로 성장할 것을 믿고, 광고했을 때, 대부분의 교인들은 믿지 않고 하나의 과대망상으로 봤지만, 지금은 모든 교인들이 이구동성으로 1,000명 이상이 모이는 교회가 될 것을 믿고, 말하며, 예배 처소의 협소함을 염려하는 중에 있습니다. 할렐루야! 제가 인식년 연구를 위해 떠나도 교회는 인도네시아인 전도사들을 통해 계속 부흥될 것입니다. 당장 급한 문제는 1,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예배 처소를 준비하는 일입니다. 내년 말까지의 목표는 2,000명이 모이는 교회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1990년 6월 21일 기도편지에서 발췌)

6월 하순에 엘리 수파르노 전도사를 목사로 세워놓고 저는 인도네시아선교회의 연례수양회의 강사로 동부 자바에 있는 바뚜에 가서 설교와 강의를 하고, 7월 초 그곳에서 직접 한국으로 안식년을 떠나 한국과 웨일즈에 가 있었습니다. 다음 해 1월 웨일즈에 있는 저에게 팔렘방교회를 담임한 엘리 수파르노 목사로부터 교인이 1,000명을 넘어 계속 성장 중이라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성경통독 수련회

1997년 초부터 1998년 2월까지 인도네시아의 두 번째 큰 도시인 수바라야의 GPII교단의 안디옥 교회를 담임해 인도했습니다. 1998년 1월 1~3일 안디옥 교회 전교인 신년 수양회에서 전교인들이 함께 신약성경을 마태복음 첫 장부터 요한 계시록 마지막 장까지 통독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든 교인들이 함께 모여서 한 사람이 대표로 한 장을 읽으면, 다른 사람이 그 다음 장을 대표로 읽는 방법으로 2박 3일간의 수련회가 있었습니다. 개회 예배와 폐회 예배만 있고 식사와 휴식 외에는 다른 순서는 전혀 없는 성경통독 수련회였습니다. 신양 성경을 처음 한 번 읽었다는 감격에 눈물을 흘리는 교인도 있었습니다. 좋은 열매가 있었다고 기억됩니다.

김병선 선교사 (G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