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안팎의 이슬람화 전략의 실체를 객관화하고, 국내 이슬람권 이주자를 더욱 열매 맺는 섬김으로 잘 섬기고자 열린 BTM(Back To Muslim) 2010 서울 포럼이 지난 2월 18일(목)과 19일 강남YMCA 다애교회(담임 이순근)에서 있었다. 다음은 이 자리에서 정마태 선교사(한국인터서브)가 발표한 "영국 상황과 비교한 한국내 무슬림들을 향한 한국 복음 주의의 반응"(요약)으로써, 5차례에 걸쳐 나눠 게재하고 있다. (사진 : 한국인터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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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이러한 주제와 관련된 역사적인 렌즈
 
이슬람-기독교 관계의 전체 역사를 오늘까지 살펴볼 때 이 주제에 관한 한, '아무것도 태양 아래 새로운'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신학 논쟁, 정치적 찾기 싸움, 편견, 오해, 증오, 살인등등 대부분의 기록을 통해 두 종교 사람들의 사이에 진행된 이야기들, 역사들이 오늘날에 새로운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도 상호 작용 (622-830), 중세기 (긴장, 무슬림과 서구역사 -십자군 전쟁과 개혁기), 균형의 변화로 권력의 축이 바뀜: 새로운 생각과 제국주의, 그리고 대화 및 대립의 19-20 세기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십자군 시대
 
12 세기의 저명한 기독교 설교자 및 교사인 클레보 (Clairvaux)의 버나드 (1090-1153년 8월 20일)가 2차 십자군 원정을 강력히 지원했다는 사실은 정말 충경적인 일입니다. 성 버나드는 2차 십자군을 위한 십자군들을 동원한 가장 저명한 설교자였습니다. 

그는 1150년에 우리가 잘 아는 다음의 찬송가 (찬송가 85장) 를 작사하였습니다.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맘이 좋거든, 주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만민의 구주 예수여, 귀하신 이름은, 천지에 온갖 이름 중 비할 데 없도다
참회개 하는 자에게 소망이 되시고, 구하고 찾는 자에게 기쁨이 되신다.
예수의 넓은 사랑을 어찌다 말하랴, 그 사랑 받은 사람만 그 사랑 알도다
사랑의 구조 예수여 내 기쁨 되시고, 이제와 또한 영원히 영광이 되소서

이 찬송을 부르며 십자군 원에 참여하여 무슬림들을 무참히 죽였던 젊은 그리스도인들을 상상해 보십시요!

하지만, 피터 부주교(1092-1156)는 Burgundy에 소재한 Cluny의 대 수도원장인으로서 그의 친구인 성 버나드와는 매우 달리 기독교에 대해 이해 헸습니다. 그리고 이슬람에 대한 다른 접근 빙식을 제안 하였습니다. 충성심을 가지고 그는 십자군원정을 반대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대안을 제안했습니다. 즉, 광범위하게 이슬람 종교를 연구하고 그리고 이슬람 자체의 원자료들을 연구한 것입니다. 이 작업으로 인해서 무슬림 자료들을 쉽게 보도록 하기 위한 포괄적인 번역 프로그램을 포함 시키게 되었습니다. 또, 피터 부주교 자신이 이 일을 착수하는 일에 매진 하게 되었고, 1142년에는 피터 자신이 스페인, 및 Kritzeck등을 여행하였는데, 이 여행을 ‘유럽 지성사에 있어서 중대한 사건’으로 일컬어 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크게, 그리고 긍정적으로, 배울 수 있는 예가 하나 더 있는데, 끔찍한 십자군 시대 중에 무슬림들을 접근한 프란시스 형제단을 만든 아씨스의 프란시스의 예입니다.

1219년에 아씨시의 프랜시스는 이집트의 다미에타 (Damietta)를 향하여 5차 십자군 원정대와 동행합니다. 그는 그 자신이 싸우지도 않았고, 십자군대들에게 싸우라고 격려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십자군들이 이 전투에서 패배 할 것이라고 경고하였고, 그들에게 다른 방식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한 사람의 동반자의 보호 없이, 술탄 (Sultan Al-Kamil) 캠프에 가서, 술탄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프란시스이후 프란시스 형제단의 한 무리는 이슬람 법을 잘 따르며 온건히 복음을 살며 복음을 전파한 부류가 있었고, 다른 프란시스 형제단은 과격하게 복음을 전파하며 무슬ㄹ침들에게 도전을 주므로써 수많은 순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1220년 1월 16일에 the Almohad caliph Abu Ya’qub Yusuf al-Mustansir의 칼에 의하여 5명의 프란시스 형제들이 목이 잘리는 것을 출발로, 1481년까지 1220명의 프란시스 형제들이 순교하게 됩니다. 

2. 종교 개혁 시대
 
십자군의 끔찍한 이야기는 별도로 하고, 마틴 루터와 존 캘빈이 너무 열정적으로 성경을 옹호했으므로, 필자는 무슬림들도 또한 그들이 옹호 해 주었을 것으로 믿었었습니다. 옹호합니다 그러나 역사적인 기록 증거를 통하여 볼 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마틴 루터가 믿고 자신의 원수를 사랑했을까요?? 루터는 교회와 국가의 기능을 분명히 나눈 분입니다. 이런 구분은 그리스도인 개인과 세속적인 영역에서의 개인을 구분하는 것을 반영합니다. 이런 배경이, 루터로 하여금 그의 산상 수훈 주석에서 적들과 싸우는 것을 옹호하도록 만들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반대하는 세력에 협력하지 않기 위해서, 나는 하나님과 원수되는 자들에는, 나 또한 원수가 되어야만 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무슬림들을 그리스도의 원수임과 동시에, 그들 자신의 원수로 동시에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루터에게 있어서 무엇이 선교인가요? 그리스도인들이 무슬림들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는 제안을 루터의 내용의 편지나 설교에서 찾아 보기 힘듭니다.

터키인들에 대한 그의 특정적인 글에서 그는 결코 기독교인들이 복음을 가지고, 터키인들 가운데 의도적을 가야 한다는 제안을 결코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는 한, 그는 스스로 무슬림들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존 캘빈은 어떻습니까? 그의 설교 중 하나 (신명기 38번에 대한 그의 설교 88번) 에서 오히려 흉측한 메모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는 그것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터키인들이 그들의 무하마드를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에, 대신 두개 될 때, 그리고 우리의 믿음의 중요한 원리 중의 하나인 하나님이 육신으로 계시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 그들은 영 비뚤어진 사람들로서 죄를 짓는 것이고, 많은 이들을 방황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그들은 죽어 마땅하다.’

개신교인들이 그들의 무슬림 이웃들과 이슬람에 대하여 왜 그토록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는 것도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닌가요? 왜냐하면 개신교인들이 알게, 모르게 마틴 루터와 죤 칼빈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종교개혁과 계몽기와 무슬림들을 향한 개혁 주의 신학과 사상들 이후, 개신교인들이 시온주의 (Zionism) 가르침과, 이스라엘을 편애하는 신학, 세대 주의 신학에 영향 받은 전천년설등에 의하여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3. 현대 선교 시대
 
프랑스 식민시대 동안 찰스 드 포고 (Charles de Foucauld 프랑스 수도사 또는 선교사. 1858년 9월 15일 -1916년 12월 1일) 우리에게 무슬림 사역에 대한 멋진 놀라운 모델을 보여 줍니다.

그는 투아레그(Tuareg) 사람들 (알제리아에 사는 매웅 강한 무슬림족)가운데의 각 무슬림을 "단순한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예수"로 여겼습니다.. 이것이 복음 메시지의 진정성을 지지하는 것입니다.

알리 메라드 (Ali Merad)라는 탁월한 이슬람교도 학자가 프랑스 선교사인 ‘챨스 드 포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증언을 하였습니다.

"기독교와 이슬람을 병행하여 말하자면, 이슬람의 경우, 선지자 무함마드를 본 받는 일은 믿음의 진정한 싸인 (표)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최고의 응답이다. (꾸란 33:21-진실로 너희에게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의 훌륭한 모범이 있었거늘 이는 하나님과 내세와 하나님을 염원하는 것을 원하는 자를 위해서이니라.-최영길 번역) 이와 같이 Algerian 개혁자이며 꾸란 주석가인 이븐 바디스 (Ibn Badis 1889-1940)는 원리를 말하는 그의 유명한 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선지자를 더 완벽히 본받을수록, 하나님을 따르는 임무를 더 완벽하게 이행 것이다."

예수를 본받는 것이 책의 백성들에 대한 이슬람의 기대에 적절히 반응하는 것이고, 복음의 진정성을 가장 아름답게 포함하고 드러내는 길이며, 무슬림들에게 우정을 갖는 가장 근접한 길입니다. 그리고 이 구절이 기독인과 무슬림의 대화에 있어서 열쇠가 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꾸란 5:85)

유럽인들을 위하여 무슬림들이 희생당한 것을 무슬림들이 의식하고 있지만, 겸손과, 자선, 그리고 이세상의 쾌락과 좋은 것들을 포기하며, 가난한 자들과 불행한 자들을 섬기는 일에 헌신 하는 일등은 항상 무슬림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는 아름다운 미덕들입니다.  보통 사람들이나, 특별한 종교 지도자들이나, 제국주의의 시스템이나 도덕률에 대해 매우 좋지 않게 생각하는 아람 무슬림 옹호자들 마져도 이런 느낌을 동일하게 갖는 다고 말하는 것은 공평한 일입니다.

1800-1938년 사이에 인도와 근동에서 일한 성공화와 개혁 교단의 무슬림 선교 역사책을 읽거나, 기타 여러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예를 들면, 인도의 윌리엄 캐리 (1761-1834), 헨리 마틴 (5411-1812), 토마스 발피 프렌취-최초의 라호르 비숍 (1825-1891과), 루이스 베반 존스-헨리 마틴 학교의 초대 교장 (1880-1960), 그리고, 이집트의 템플 가드너 (1873-1928), 특히 알제리아에서 사역한 프랑스 선교사 찰스 드 포고) 우리는 격려와 도전과 함께 무슬림들을 긍정적으로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좋은 것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음의 교훈들을 그 선교사들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본받는 것의 중요성
-총체적 방식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또는 선교사 및 지도자)들을 제자화하는 일
-지역 언어를 잘 하도록 배우며 꾸란 아랍어를 잘 배울 필요성
-글로벌 협력 (파트너)
 
4. 최근의 발전: ‘우리와 당신 사이의 공통 단어’

-2006년 9월 12일,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독일의 Regensburg 대학교 이슬람에 대해 코멘트를 한 연설을 하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무슬림들이 세계적으로 널리 시위하게 되었습니다

-한달 뒤인 2006년 10월 12일, 교황의 그러한 이슬람에 대한 입장을 비판하는 ‘교황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을 38명의 최고 이슬람 학자들과 성직자들이 출판하게 됩니다.

-일년 후, 2007년 10월 11일, 더 큰 무리인 138명의 이슬람 학자들, 성직자들과 지성인들이 ‘우리와 당신들 사이의 공통의 말’이라는 공개 서한을 교황과 기독교 교단 지도자들에게 보냈습니다.
 
이 ‘공통의 말’ 문서는 개인들과 여러 기관들로부터 많은 반응을 받았습니다. 가장 높은 공개 응답은 에일 대학교의 네 명의 학자들로부터 왔습니다. 그 응답의 제목은 ‘하나님과 이웃을 함께 사랑함’ 이었습니다. 이 문건에 세계 기독교 지도자 300명이 승인했습니다. (계속)

정마태 선교사 (한국인터서브 대표)
http://www.intersk.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