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의사회(KCMA)가 지난 6일(토)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제45차 총회 및 연차세미나를 개최했다. 다음은 “은퇴 후 SILVER MISSION의 의의와 철학”이란 주제로 한국기독의사회 김 윤 이사(송추효자요양병원)가 강연한 내용이다. 연차세미나의 주제인 '실버미션'을 의료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글이다.

오늘 우리가 사는 사회는 다양화된 사회입니다. 따라서 직업의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어떤 직종은 이름만 보아서는 무엇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직업도 많은 것이 현대 사회입니다. 멀리 갈 것 없이 저희 의사라는 입장에서만 보아도 옛날에는 ‘의사’하면 그만이었는데 지금은 그냥 의사라면 아무도 쳐다보지 않을 것입니다. 무슨 무슨 전문의 그것도 예를 들어 저같이 외과의사의 경우를 보면 얼마 전까지는 “아! 외과의사시군요” 했지만 지금은 그것만 갖고는 인정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도 외과 내에 신경외과, 흉부외과, 정형외과, 성형외과, 비뇨기과, 안과, 이비인후과 등을 모두 포함해 외과의사의 영역이던 것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고 이제는 외과 내에서도 폐, 심장, 위, 간, 대장, 외과 전문의로 갈라지더니 거기에서 장기이식 전문의라는 이름으로 합세하고 이제는 복강경, 로봇 수술 시대로 변천하면서 의사는 이제 옛날의 ‘의사’라는 이미지보다는 고도의 세련된 기술자(?)의 대접을 받게 된 것이 오늘의 현실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는지 혼동스러운 것이 오늘날 의료계가 당면한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의학이 발달할수록 진단과 치료의 능력은 향상되었지만 역설적으로 생명에 대한 경외심은 옅어지고 수명은 연장되었지만 생명에 대한 존엄성은 오히려 더 잊혀져 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염려스러운 것입니다.

오늘 저에게 주어진 제목이 은퇴 후의 “SILVER MISSION”이라는 제목입니다. 물론 오늘 이 자리에서 논의 되는 은퇴 후의 미션이라는 단어의 뜻은 이 자리가 기독의사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은퇴 후의 미션이라는 단어의 뜻은 지금 이 자리에서 의미하는 것과는 동떨어진 의미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통상 우리는 은퇴 후의 계획을 이야기하게 되면 보통은 “아직 아무 계획도 없어” “너무 바빠서 그런 거 생각할 여유가 없어” “당장 할 일이 너무 많고 시달려서 그런데 신경 쓸 시간이 없어” 하거나 혹은 은퇴 후의 많은 계획, 예를 들면 마음속으로만 계획하던 여행, 취미생활, 운동 등을 구체화할 신체적,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막연하게 망설이거나 아니면 현재의 만족할만한 위치에 있어서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인 명예, 권력 등을 놓치기 아쉬운 생각에 은퇴 후를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은퇴 후를 모든 스트레스와 귀찮은 일상생활에서 벗어나서 유토피아로 들어가는 티켓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인생의 가장 정점으로 올라간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주로 CEO들이 그렇다고 합니다. 어떤 상황이던 언젠가는 우리는 은퇴라는 상황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래서 은퇴 후의 미션에 대해서 논의하고 계획할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때 여기서 논의되는 은퇴 후의 미션의 내용은 대체로 재산, 건강, SEX 등이 주된 내용이거나 취미, 친구관계, 자기 자신의 개발 등에 관한 내용 또는 투자, 컴퓨터, 가족관계 등 이러한 것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고 정리하며 어떻게 새로운 삶의 활력을 찾을까 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의 내용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의 입장에서 보면 같은 단어이지만 그 의미는 다를 것입니다. “SILVER MISSION”이라는 용어가 비교적 최근에 사용되기 시작한 단어라고 생각이 되는데, 조금 범위를 확대한다면 얼마 전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SENIOR MISSION”에 관계를 갖고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2007년 SENIOR MISSION 대회가 처음 열린 후 2009년 제2차 SENIOR MISSION 대회가 열렸습니다. 이 대회 당시, 대회장의 인사말을 보면 이렇게 시작됩니다.

“한국교회에 주신 큰 축복가운데 선교한국 운동이 있습니다. 20~30대 젊은이들이 매 2년 마다 세계선교를 위해 도전을 받는 선교운동입니다. 몇 년 전부터는 하나님께서 인생의 많은 경험을 갖고 삶을 이제는 평가해 볼 수 있는 계절에 한국교회의 40~80대 “SENIOR” 들을 부르셔서 세계를 변화시켜 이 세상 나라들이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시키는 사역에 헌신하도록 도전하고 계십니다. 한국교회 해외선교사가 벌써 2만 명을 넘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2만 명 중 절반이 넘는 선교사들이 “SENIOR 평신도 선교사” 들입니다. (중략) 정규 신학교 출신 목사 선교사들의 입지가 점점 더 좁아져가고 있습니다. 직장생활에서 많은 지식과 경험을 쌓은 평신도들이 이 시대에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부르심을 듣고 일어서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중략) 비즈니스를 통한 선교, 국내 백 만이 넘는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 사업가들을 향한 선교, 전문선교사들을 옆에서 지원하는 사역들이나 그들을 돌보는 사역들, 이 시니어들 이것이 시니어들이 할 수 있는 사역의 영역들입니다” (이하 생략)

여기까지의 이 인사말을 들어보면 이제 어느 정도 인생의 경험도 쌓고 경제적으로도 안정이 되고 사회적으로 기반도 닦았으므로 크리스천이라면 선교에 대한 소명을 갖고 행동하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이에 비해 “SILVER MISSION”은 은퇴 후의 삶의 양식을 미션이라는 개념과 어떻게 연계시켜서 크리스천으로써 은퇴 후의 삶을 의미 있게 영위 할 것인가? 하는 것이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야 할 과제인 것 같습니다.

“은퇴”라는 말은 통상 자신이 전문적으로 일하던 직장이나 기관으로부터 일정한 나이가 되면 규정에 따라 자신이 평생 아니면 일정 기간 동안 일하던 곳으로부터 떠나야 하는 시점입니다. 직종에 따라 은퇴해야 하는 나이는 일정하지 않고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공통적인 사실은 최근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건강이 좋아지면서 은퇴의 시기를 연장하자는 목소리가 자꾸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의 주제인 기독의료인으로써 SILVER MISSION의 의미는 단지 최근에 관심을 갖고 활동을 시작한 SENIOR MISSION의 한 분야로써만 그 의미를 찾을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의료인의 기능은 어떻게 보면 단지 여러 가지 전문적 직종 중 한 가지로써 의료인의 사명을 갖고 선교활동을 한다고 하는 면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우선 몇 가지는 분명히 구별해야 할 요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어떤 A라는 사람이 전문인으로써 자신의 직장에서 은퇴 후 자신의 전문기능을 이용해 선교활동을 한다면 이는 의미가 있겠지요. 그러나 의료인의 경우 자신의 전문적 지식을 갖고 은퇴 후 환자를 돌본다는 것은 환자의 병을 고치는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생활동의 3가지는 우리가 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교육, 전도, 치유 입니다. (마4:23) 예수님의 치유에는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네 죄가 사함 받았다” 등 같은 질병의 치유와 동시에 죄의 사함과 구원의 메시지를 함께 주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제사장이 의사의 기능을 담당해 모든 병의 진단과 대처 방법을 책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 관습은 예수님 당시까지도 이어져 옴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문둥병 환자를 고치신 후 네 몸을 제사장에 가서 보이고 병이 치유 됐음에 대한 확인을 율법에 명시되어 있는 규정에 따를 것을 말씀하시고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구태여 성경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고대 원시사회에서는 제사장이나 주술사 등이 의사의 기능을 병행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또 저의 개인적 느낌인지 모르지만 불과 몇 년 사이에 병에 대한 인식과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가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질병에 대한 인식은 질병과 질병에 걸린 환자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병든 환자를 하나의 인격적 존재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는데 비해 오늘날 우리는 질병과 환자의 관계에 있어서 환자라는 인격적 존재는 소홀해지고 오히려 병든 부분(예를 들면 장기, 즉 머리, 뇌, 신경, 심장, 폐, 식도, 위, 소장, 대장, 척추, 간, 담낭 등등)과 의사와의 관계를 더 중요한 위치에 놓고 생각하기 때문에 의사는 환자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병든 장기를 고치는 기술자의 대접을 받게 된 것이 현대 사회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염려인 것입니다. 예를 들면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맹장염 수술을 한 의사는 수술 후 환자나 보호자로부터 생명의 은인으로 대접을 받았지만 지금은 맹장염 수술을 한 의사는 맹장을 잘 떼어낸 기술자 이상의 대우는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인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의술이 발전하고 의학이 발달하면서 인간이 질병을 치료하는 능력은 엄청나게 발전했지만 생명의 소중함이나 귀중함은 오히려 점점 더 잃어가고 있는 것이 현대 사회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질병의 치료는 단순한 전문적 지식인의 과학적 행위가 아닌 것입니다. 치유는 하나님에게 속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의사”의 의료행위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아담과 이브가 범죄 후 에덴에서 쫓겨난 인간의 모습을 최소한 육체적으로는 창조 당시의 모습으로 돌려놓으라고 허락해주신 성직인 것입니다. 그러나 문명이라는 틀 속에서 인간들은 의료분야에 있어서 인간을 통일된 하나의 영적 존재로써 전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조각조각 뜯어서 전문 분야라는 이름 아래 인간의 모습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점점 유물론적 존재로 격하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진단하기 어렵고 치유하기 힘든 질병을 고치기 위한 의료의 발전은 필연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에 편승해 이를 자신의 필요한 방향으로 이끌고 가는 사탄의 계획에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동참하는 것이 아닌지 깨달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최근 기독의사들의 모임에서는 “전인치유”라는 용어가 회자되고 있지만 현실과는 많은 거리가 있는 것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치유는 “BUSINESS MISSION”의 문제가 아닙니다. 원래 치유는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사랑이 하나님에게 속한 것처럼(요일4:7) 말입니다.

정리를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인생의 수명이 많이 길어졌지만, 100년도 되지 못합니다. 모세의 기도처럼 “우리의 연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90:10) 하지 않습니까? 시간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셀 수 없을 만큼 끝없는 공간의 개념입니다. 영겁의 시간 속에서 더구나 영생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크리스천에게 있어서 100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을 다시 토막토막 쪼개어 은퇴 후의 삶이 어떠니 은퇴 후의 미션이 어떠니 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넌센스 같아 보이지 않는지요? 이름을 어떻게 부르던지 우리가 크리스천이라면 여러분의 삶 자체가 우리가 어럽게 생각하는 ‘미션’ 입니다. 저는 은퇴 후의 “SILVER MISSION”이라는 개념은 여러분의 현재의 삶의 연장의 한 형태라고 하고 싶습니다. 은퇴 후의 미션이 어떻니 저떻니 하고 떠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어떠한 종류의 미션이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계획은 우리가 하지만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한국기독의사회 김 윤 이사(송추효자요양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