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함께하는 다문화 네트워크(이사장 김재용)는 "금세기 들어 개발국들의 급속한 노령화의 진전과 가난한 나라의 인구 증가는 수 천만 명의 이주노동자들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그 결과 우리나라에서도 수많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3D업종에서 일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음은 신상록 목사(함께하는다문화네트워크 상임이사)의 최근 있었던 희망포럼 강연 "유럽의 이민정책과 사회통합에서 본 한국의 다문화 사회 - 진단과 전망" 전문이다.

ssr1.jpg2009년 12월 2일 현재 유럽사회는 경제통합에 이어 정치통합에 성공하였으나 이민자 특히 이슬람이민자에 대한 거부감으로 안정적인 사회통합이 실현될 수 있을지 우려되는 상황이나타나고 있다. 스위스는 최근 국민투표를 통해 이슬람 사원의 첨탑 신규 건설을 금지하는 안건을 57.5%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첨탑은 무슬림의 기도 시간을 알리는 이슬람 사원의 상징적 건축물이다. 이번 국민투표는 이민 문제에 대해 우파적 태도를 취해온 스위스 국민당이 주도했다. 이번 스위스 국민들의 결정에 대해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찬성하는 입장이며, 히잡에 대해서도 금지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반면 스위스 국민투표결과를 둘러싼 후폭풍이 거세다. 유엔은 스위스의 첨탑 건설 금지안 가결에 대해 "명백한 차별"이고 지극히 분열주의적이라며 비난했다. (AP=연합뉴스) 이슬람 국가들과의 관계를 고려해 첨탑 금지안에 반대해온 스위스 연방정부는 일단 “투표 결과를 존중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슬람권 최대 국제기구인 이슬람회의기구 이흐사노글루 사무총장은 스위스 외무장관에 전화를 걸어 이번 투표가 “보편적인 인권 가치에 반하는 외국인 혐오, 편견, 차별”이라고 비난했다. 스위스 주교회도 “종교적 자유에 대한 타격”이라고 비판했고, 로마 교황청도 같은 태도를 취했다. 아스마 자한기르 종교와 신앙의 자유에 대한 유엔 특별보고관은 1일 영국 <인디펜던트>에 “이번 투표결과는 스위스 무슬림에 대한 분명한 차별”이라고 말했다. 터키의 에게멘 바기스 EU담당장관은 스위스 국민투표에서 이슬람 사원 첨탑건설 금지안이 가결된 것에 대해 무슬림은 스위스 은행 예치금을 모두 인출하는 방법으로 응징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스위스 녹색당은 “유럽 인권재판소에 제소하겠다”고 밝혀, 이번 논란은 유럽 법정으로 옮겨갈 것으로 보인다. 스위스는 이번 일로 지난번 덴마크처럼 대대적인 불매 운동에 직면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에벨리네 비드머슐룸프 스위스 법무장관은 “이번 결정이 수출과 관광산업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스위스는 지난해 전체 수출액의 7%인 145억달러 어치를 이슬람 국가에 수출했다.

유럽사회에 진출한 무슬림이민자들과 서구사회의 충돌은 처음이 아니다.

2005년 9월 덴마크 일간 <윌란스 포스텐>은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마호메트)가 머리에 터번 대신 불붙은 폭탄을 두르고 있는 모습의 풍자화를 실었다가 이슬람 사회의 거센 반발을 샀다. 리비아는 코펜하겐의 대사관을 폐쇄했고, 중동 국가들은 덴마크 제품 불매운동에 나섰다. “풍자는 언론의 자유”라며 국경없는 기자회와 유럽 언론이 옹호했지만, 결국 신문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또한 이슬람 여성이 머리에 쓰는 히잡 사건 건은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정교분리를 국가나 기독교적 전통이 강한 사회에서 여학생들이 퇴학을 당하고, 교사가 취업을 거부당하는 등 유럽의 정서와 충돌하면서 유럽사회에 적지 않은 두려움을 주고 있으며, 실제 유럽사회통합의 최대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 특히 미국의 지난 2001년 9.11테러, 지난 2005년 영국, 프랑스의 무슬림이민자들의 소요 등은 유럽사회가 이민법을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다문화주의에서 동화주의로 이민정책의 큰 흐름을 바꾸는 계기를 만들고 있다. 금번 스위스 국민들의 선택은 평소의 여론과 정 반대 결과를 나타냈는데 이는 무슬림이 유럽사회에서 위협세력으로 점차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두려움이 현실로 표출된 것 이라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무슬림들은 영국을 유럽 이슬람화의 전진기지로, 한국을 아시아 이슬람화의 전진기지로 삼고 있다.  20세기 후반 무슬림들은 2080년까지 전세계를 이슬람화한다는 목표를 세운바있다. 이들은 우선 유럽을 이슬람화하기 위해 영국을 전진기지로 삼았으며, 이 전략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 현재 런던은 극단주의 무슬림들의 요충지가 되었으며, 영국에는 120만 명 이상의 무슬림들이 거주한다. 그리고 유럽의 무슬림들은 빠른 속도로 증가해 왔다. 이제 무슬림들은 아시아를 이슬람화하기 위해 한국을 전진기지로 삼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공격적인 선교를 펼치고 있다.

이슬람 전문가인 전호진 박사(한반도국제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는 이스라엘(Israel)과 이슬람(Islam)에 대한 균형있는 이해와 접근을 논의하는 ‘투아이즈네트워크’(Two I’s Network)의 창립을 앞두고 15일 기자회견에서 국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슬람 선교운동에 관해 한국 기독교계의 적극적인 관심과 대응을 요청했다.

전 박사에 따르면,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이미 중동 I 국가의 한 언론은 무슬림들이 한국을 이슬람화하겠다는 전략을 수립한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이 전략은 2005년 11월 서울에서 개최된 중동 이슬람 지도자 선교대회에서 한국을 2020년까지 이슬람국으로 만들겠다는 전략으로 구체화됐다. 문화교류, 경제협력 등을 이유로 작년 1월 서울에서 열린 OPEC종교부 장관회의나 9월 ‘중동·이슬람문화풍물대전’, 11월 제4차 한·중동포럼 등에서는 직간접적으로 이슬람 포교와 관련된 내용이 함께 언급됐다고 전 박사는 주장했다. “이와 같은 국내 이슬람 관련 행사들은 중동에서는 크게 보도되지만, 한국에서는 오히려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며 “더구나 이런 행사가 우리나라 정부나 대기업의 협력과 지원을 받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고 덧붙여 말했다.

전 박사는 이슬람이 일부 사람들이나 언론 등에 의해 ‘평화의 종교’로 가장되거나 하나의 문화로써 일반인들에게 소개되는 점 역시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대학생들을 타깃으로 펼치는 적극적인 선교활동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슬람은 아랍어를 제2외국어로 채택하는 운동을 벌이며 아랍어과 학생들에게 장학금 혜택을 주거나 중동으로 유학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중동에 소재한 대학원에서 학위를 받으려면 유학생들은 십중팔구 코란을 읽고 이슬람으로 개종할 수밖에 없다.

이 외에 전략적으로 한국 여성이나 농어촌 총각과 결혼해 자녀를 무슬림화 한다든지, 중동에 있는 한국인 근로자나 자이툰 부대원을 대상으로 이슬람교를 전파하기도 한다. 무슬림들은 교회에도 적극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외국인근로자교회의 사역자들을 이슬람 행사에 초청하고 국내 일부 대형교회 앞에 사무실을 열어 교회활동을 모니터링하는 것이 그 예다. 국내 무슬림 외국인 근로자들에 의해서는 부평에 모스크가 건립됐으며, 사우디아라비아 정부 지원으로 한국어 코란은 재번역 됐다.

전 박사는 “이슬람의 선교전략을 한국교회에 알릴 뿐만 아니라 이슬람의 종교 인권 탄압을 고발해 이슬람의 실상을 알려야 한다”며 “이러한 역할을 투아이즈네트워크가 앞으로 감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의자가 유럽사회의 이민과 사회통합문제를 시작하면서 무슬림이민자 문제에 특히 주목하는 이유는 유럽사회 대부분이 기독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데다. 무슬림의 종교적 가치가 유럽사회에 동화되지 못하고 빈번히 출동하면서 사회불안을 야기시키고 있고, 유럽인들 또한 무슬림이민자에 대한 배타적 태도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 한국의 다문화사회 통합에 있어서 무슬림이민자들이 큰 걸림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무슬림들이 한국을 2020년까지 ‘무슬림화’ 한다는 세계전략을 설정하고 적극적인 공세를 펴 보이고 있는 점은 한국 다문화사회 통합에 큰 걸림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유럽의 이민초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생존권보장요구에서 문화적 욕구단계로 이동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유럽사회와 차이나는 것은 유럽은 100년 혹은 200년에 거쳐서 다문화사회로 발전한데 비해 한국은 압축 성장에 힘입어 불과 10여년 만에 다문화사회에 진입하였고, 인종적으로는 중국인의 유입이 많고, 종교적으로는 이슬람 증가세가 뚜렷하다.  한국에 있는 무슬림인구는 공식으로는 15만명이지만 실제로는 훨씬 많을 것으로 본다. 이민자 중 무슬림이민자의 금속한 증가는 오늘날 유럽사화가 겪는 고통을 되풀이 하지 않을까 라는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2009년 한국의 사회는 어느 특정 종교로 인한 문제가 아니며,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민의 동기와 원인

1. 이민(migration)은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일상적 거주지(usualresidence)을 옮기는 현상을 지칭하며, emigration(나가는 것) 과 immigration(들어 오는 것)으로 구분된다.
2. 세계화의 진전으로 이민은 보편화된 세계적 가치이다.
3. 결혼이민자의 경우, 여성의 상품화, 신분탈출기회, 경제문제 해결, 자아실현, 농어촌 결혼성비 불균형 해소, 국가정책의 일환 등이다.
4. 외국인노동자의 경우, 경제문제 해결을 통한 신분 향상이 우선이다.
한마디로 경제성장과 저출산 ,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 생활수준의 향상과 고학력화로 소위 3D업종의 기피현상 및 저 개발국가에서 보다 좋은 생활환경을 차장 취업하기 좋은 나라로 이동하는 것이 외국인력 유입 촉진 원인이 되고 있다.

다음은 유럽의 이민정책을 성격별로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성격별로 살펴본 유럽의 이민정책

유럽국가의 이민정책은 국가 간의 협의나 기준에 따라 발전해 왔다고 볼 수 없으며, 국제적인 기준(협정)이 정해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첫째 자국의 필요에 따른 이민정책이었다.

프랑스, 영국, 독일은 그들의 식민지인 이슬람국가로부터 부족한 노동력을 제공받아 경제재건을 이루었다. (프랑스는 알제리에서, 독일은 터키에서) 프랑스에는 무슬림이민자가 전체인구의 7%인 약 400만 명이 있으며, 무슬림이민자 수로는 유럽 최대이다. 프랑스는2차 대전 동안 약60만명의 자국 인구를 잃었고, 인구 노쇠현상을 겪게 되었다. 또한 1945년 이후 전쟁동안 국토가 피폐해진 탓에 재건사업이 급박하였고, 인구문제, 노동력문제가 심각하게 되어 1945년 11월2일 법령에 따른 ‘인구 및 가족고위위원회’와 ‘국립이민청'을 설치하고, 애쓴 결과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인 들과 마그레브출신 무슬림들을 대거 프랑스에 유입되었다. 그들은 열약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들만의 공동체를 이루어 거주하였다. 1974년 당시 프랑스에 거주하는 이민자 중 무슬림이민자가 전체의 86%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1974년 오일쇼크로 프랑스 경제가 어려워지자 공권력은 이민자 수를 억제하는 다양한 조치들을 취하였고, 유럽공동체 소속 국민을 제외하고는  이민의 일시적 중단이라는 중대조치를 취하였고, 외국인에게는 일체 노동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심지어 외국인 이민자들을 본국으로 보내기 위해 1만 프랑의 귀국보조금을 제시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처럼 자국의 필요에 따라 이민자들을 수입하기도하고 제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상당한 이민자들이 프랑스 내에 들어와 살고 있고, 2세대의 수가 늘어났으며, 가족들을 초청하면서 무슬림이민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국내에 들어온 이민자의 삶의 질에 관한 재고 없이 필요에 따라 허용과 제한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져 왔다는 점이다. 그러는 동안 이민자들은 인권과 복지의 사각지대로  점점 내 몰리게 되었고, 1990년대 알제리 이민자의 주거환경은 11%가 목욕탕이나 화장실이 없고, 16%는 난방이 되지 않으며, 자기집을 소유한자가 드물었다고 한다. 이렇게 된 데는 준비되지 않은 이민자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필요에 따라 이민을 허용했다가 이민자의 삶을 무관심한 당국자들의 책임도 크다고 할 수 있다. 2005년 가을 프랑스를 뜨겁게 달군 방리유(banlieue 대도시 근교)소요사태는 이러한 배경속에서 일어났다고 보여진다.

둘째 이민자의 문화(종교포함)나 가치를 인정하지 않은 동화주의 정책이었다.

동화의 개념은 다른문화공간에서 취득한 본래의 관습전체를 포기하는것이다.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동화주의 정책을 이민자 통합모델로 삼아온 나라이다. 프랑스 헌법은 단일하고 분리 될 수 없는 사회내에 ‘소수’를 인정하는것을 금지하고있고, ‘소수’라는 용어를 언급하는 협정이나 조약을 거부한다.

영국은 전통적으로 다문화주의를 표방해 온 나라이다. 그러나 9.11사건과 런던테러는 ‘무슬림=테러리스트’라는 공식을 만들어 냄으로써 영국사회에서 무슬림에 대한 혐오감정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다문화주의에 대한 비판이 만연하고 ‘영국성’을 강화해야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영국이 이제는 이민자 없이는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이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고 볼 때 영국이 다문화주의를 쉽게 포기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런 가운데 영국정부는 2001년 이후 ‘동화주의’ 나 ‘다문화주의’와 같은 고정된 통합방식을 버리고 새로이 들어 온 이민자들에게 ‘시민개인통합방식’(civi intergration)을, 기존의 이민자들에게는 ‘반차별주의 통합방식’(antidiscrimination)을 시행하고 있다. 문제가 되는것은 반차별주의통합방식인데 무슬림들을 차별의 대상으로 인정해 주지 않은 구조적 모순을 가지고 있다.     

셋째 정당이나 개인의 정치적 계산에 따른 이민정책이었다.

네덜란드사회는 무슬림이민자들에게 다문화주의를 통해 복지혜택을 베풀고 학교교육을 시키고 문화를 보존하며 살도록 해주면 사회동화가 자동적으로 이루질것이라 생각했으나 그 기대는 산산이 무너졌다. 결국 이주민 문제는 아무조치도 취하지 못한채 방치한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공백을 이용해 권력을 차지하려는 정치인들이 등장했는데 대표적인 인사가 ‘핌 포르퇴인’ 이었다. 그는 동성애자로서 개인의 성적인 자유를 옹호하기위해 무슬림이민자들을 공격하였고,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이슬람은 후진적인 종교이고 서구의 가치가 훨씬 발전된 것이라는 식의 편파적인 언사들을 통해 큰 호응을 얻었다. 그는 선거운동중에 동물보호주의자에 의해 암살되었다 그러나 이 극적인 사건으로 그의 정당인 lpf가 대승을 거두었다. 그는 개인과 정당의 이익을 위해 이민자들을 이용한 것이다.

또하나의 인물은 팔레스타인 지도자 야세르아파트를 테러리스트로 묘사하여 반 이슬람적인 선동을 통해 정치적인 성공을 거둔 월더르스라는 사람이다. 그는 네달란드의 우파정치인이다. 그는 이슬람은 후진문화이므로 네덜란드에 사는 백만명이상의 무슬림 때문에 네덜란드문화가 위협에 처했다고 주장하면서 무슬림이민을 중단시켜야한다고 주장.   

넷째 이민자 스스로가 사회흐름에 부적응하여 스스로 게토가 되기도 하였다.

역사적으로 네덜란드는 '기둥'라는 특유한 개념이 있었다. 흔히 ‘폴더’(polder) 모델이라 부른다. 폴더모델은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집단간 합의를 통한 의사결정 정책을 의미한다. 실제로 네덜란드에서는 이해 집단간에 아예 떨어져 살면서 서로 충돌을 피하고, 어쩔 수 없을 때는 대표자들이 모여서 협의하고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하여 왔다.  즉 칼빈주의자들은 그들만의 주태간지를 형성하여 살면서, 그들의 학교와 그들의 방송국을 만들고, 그들의 신문과 클럽을 구성하며 살았다. 사회주의 집단도 그러했고, 자유주의 집단드로 그러했다. 집단간에는 거의 서로간에 상관치 않고 자신들만의 세계속에서 살아간 것이다. 모든 것을 자기집단안에서 해결하였다. 네덜란드는 이런 방식으로 상대방을 용인하고 평화공존의 길을 찾았다. 이러한 소 세계를 그들은 ‘기둥’이라 불렀다. 지주제는 19세기 이후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오랜기간동안 네덜란드인들의 삶을 규정하였다. 그러나 지주는 이 체제안에사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개인을 규제하고, 억압하는 성격을 띠었다. 그리고 그 체제를 관통하는 기본적인 성격은 엄격한 칼빈주의 윤리였다. 심지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지주역시 운영방식은 칼빈주의 였다. 즉 놀이를 일종의 죄악으로보고, 검소한 삶과 노동윤리를 강조하는 부르죠아의 윤리가 지배적이었으며, 집단내의 하층민은 일종의 선교대상이었다. 그러다가 1950년대에서 1960년대에 복지국가체제로의 사회체제가 변화하면서 사람들은 지주가 아닌 국가기구를 통해 복지 혜택을 누리면서 삶의 기반을 지주가아닌 다른데서 확보한 청년들이 기존체제에 거칠게 항의 하면서 마약, 성혁명, 쾌락주의사회로 사회변화가 이동하면서 종교적인사회에서 세속적인 사회로 바뀌어갔다. 네덜란드는 처음 무슬림이민자들에대해 다문화주의에 입각하여 그들의 이슬람지주를 도와주었고, 그들만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도록 OFU해 주엇다 그렇게 한것은 다른지주들과 마찬가지로 이슬람지주들도 네덜란드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해체되고 장기적으로 네덜란드사회에 동화되리라고 기대한 때문이다. 그러나 무슬림이민자들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들의 게토에서 가난하게 살았고, 근본적인 삶의 원칙에서 충돌하였으며, 네덜란드의 쾌락적이고 세속화의 흐름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그들은 유럽사회를 허무주의 적이고, 퇴페적인 물질주의에 사로잡힌 공허한 사회로 보고 , 환멸과 증오를 느끼며 자신이 전통문화로 되돌아갔다. 네덜란드인들은 그때부터 무슬림이민자들을 네덜란드인의 행복을 위협하는 ‘문제’로 인식하게된다. 그들은 점차 통제하게되었다. 1992년에는 개인적인 사회-재정 등록번호를 부여하였고, 1995년에는 의무적인 신분확인, 1998년에는 자료연결법(정부의 모든 DB를 연결하여 등록되지 않은자들에게는 서비스 중단 조치하는 것) 조치 그러나 이는 잘못된 사회통합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이민정책

대부분의 국가에서처럼 한국의 이민정책도 노동력 위주에서 비롯되었다. 인력수급의 우선순위와 수입 원칙 등을 세우고, 특히 단순 노동자에 대해서는 수입을 가급적 억제하기위해 순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5년마다) 그러나 일단 들어온 노동자들이 정주하는 경향이 있어 사후 관리와 사회통합에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민정책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거나 혼용되는 개념으로 ‘출입국관리’를 들 수 있다. 이민정책이란 용어는 주로 미국, 유럽 등 이민자를 정주자로 받아들이는 나라에서 주로 사용하고, 출입국이라는 용어는 일본, 대만, 홍콩 등 부족한 노동력을 일시적으로 받아들이는 나라에서 주로 사용하며, 이민자가 본국으로 반드시 돌아가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한국의 이민정책 대상은 일반적으로 1년이상 장기이민자이다. 그리고 주요대상은 결혼이민자, 그들의 자녀, 외국인 동포, 전문인력, 비전문이녁, 난민, 유학생, 투자자, 상사주재원, 불법체류자 이다. 특히 외국적 동포는 국내노동력이 부족할 때 우선적으로 고려할 대상이다.

이민정책을 3가지 분류하면, 국경관리, 체류관리, 사회통합이다. 그중 사회통합(intergration) 개념은 특정한 사람이나  집단들이 단일한 체제하에서 소속감을 공유하고, 상호간 유대관계를 발전시키는 과정이다. 다시 말하면 이민자가 국민과 어떻게 잘 어울려 살아가게 하는가를 다루는 정책이다. 그러나 정책적 제안에서 언급하겠지만  사회통합의 각론에 가서는 사회통합이라는 국가 정책적 차원의 큰 틀이 마련되지 않음으로 해서 시혜성, 전시성, 행사성으로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 다문화사회 현실과 문제

가. 다문화가정

1. 다문화가정 자녀 교육
1-1 미취학 및 부적응
1-2 인권침해 -폭력

2. 다문화가정 해체
2-1 가정폭력
2-2 위장결혼
2-3 부부간 의사소통 문제

3. 경제
3-1 80% 200만 원이하 소득
3-2 부부 연령차이로 남편의 조기 질환, 사망

나. 외국인 노동자

1. 범죄 증가
1-1 성 폭력 범죄, 폭력조직 활동(자국민 피해)
1-2 동족에 의한 피해(국적서류)
1-3 한국인의 피해
1-4 절도
1-5 보이스 피싱 사기

2. 불법체류 증가
2-1 20%(선진국 5%-10%  넘지 않음)
2-2 불법체류자의 범죄

다. 국민의식

1. 결혼 이민자에 비해 외국인 노동자에 비 호감(제노포비아)
1-1 국민에 비해 열등하다고 봄
1-2 못사는 국가출신이라는 부정적 인식
1-3 백인과 흑인의 차별, 영어권출신과 비영어권출신 차별, 경제능력 비교하여 차별
1-4 사회문제로 인식

이민자가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인 요소

1. 3D업종 노동력 제공(전문 인력 포함)
2. 출산율 증가
3. 다문화 경험, 다문화 활용
4. 복수국적 허용을 통한 인적 자원 증가(결혼이민자의 경우 신중)

한국 다문화 사회통합을 위한 정책적 제언 및 진단과 전망

가. 오늘날 한국의 다문화사회 통합의 큰 흐름은 다문화주의를 말하면서도 실제적으로는 동화주의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즉 동화주의 지향의 사회통합이다. 하지만 통합정책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120만 이민자 중 미국적자가 90%이고, 국적취득자 또는 대상자인 결혼이민자 는 겨우 10%인데 비해 사회통합 예산 대부분이 10% 대상에 시혜성 지원으로 집중되어 있다.

둘째 부처간의 경쟁과 자리다툼으로 인해 사회통합을 주도하는 정책적 로드맵이 정해지지 않았고, 해당부서도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BRAIN TOWER 부재이다. 정책없이 서비스만으로 사회통합이 실현될 것이라는 주장은 환상이다.

셋째 한국의 사회통합이 성공하려면, 이민자의 자원을 개발하고, 사용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주어야 하며, 국민과 이민자간, 이민자와 이민자간의 상호문화를 배우고 익힐 수 있는 환경조성이 필요하다. 현재와 같이 이민자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은 당분간 필요하지만 국민을 배제한 사회통합교육은 지양해야한다.

나. 결혼이민자의 높은 이혼율을 낮추는 방법은 이민 당사자의 결혼의 진정성에 우선 달려있고, 배우자와 가족들 그리고 사회적 배려가 중요하다고 본다.  국적을 취득하면 이혼을 하려고 한 어느 결혼 이민자는 남편의 사랑과 각별함에 감동하여 행복하게 살고 있고 고백하였다. 또한 국제결혼 당사자 간의 연령의 간격을 좁히는 것도 중요하다. 보통 20살 정도로 연령차가 커서 사고의 차이, 가치관의 차이, 신체적 건강의 차이 등 가정해체의 요소들을 안고 있다. 인권침해나 개인권리를 억압할 수도 있으나 사전 교육을 통해 조절해 나갈 수 있다고 본다. 교육적 측면에서 현재처럼 결혼 후 2년경과 시 국적을 신청하는 제도를 바꾸어 결혼과 동시에 교육을 받게 하는 조기교육 시스템의 도입이 필요하다.

다. 국가 간의 협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국가 간의 정치, 경제력의 차이로 이민자에 대한 협력을 하기는 쉽지 않다고 본다. 수출국입장에서는 자국민이 빠져나가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국민이 결혼생활에 실패하여 귀국하거나 어려움에 빠지는 것을 방관하는 정부는 지구상에 없다고 본다. 특히 강연자가 정부파견 베트남, 캄보디아 국제결혼 예비여성 인권침해 조사위원으로 파견 나가(2008.8.16-9.12) 그 나라 정부 관리들을 만나 공통적으로 요청받은 내용은  자국의 국제결혼여성의 안정적 생활을 위해 양국정부당국자 간 협의를 희망한다는 것이었다. 법무부에 조사 보고서를 제출했지만 아무 소식이 없다.

라. 현재의 사회통합정책은 국민,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 난민 등을 배제한  결혼이민자의 사회적응지원에 집중되어 있다. 그렇게 된 원인은 외국인 노동자나 외국인 전문인력은 자기나라로 돌아갈 대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적 흐름은 자국의 개념이 별로 없어졌다는 점이다. 약 2억 명의 사람들이 출생국가를 떠나 살고 있으며, 이민을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있다. 한국에 들어온 이민자들은 204개국에서 온 이들이며 전 세계255개국에 750만 명의 한국인이 살고 있다. 그러므로 사회통합대상을 동포, 국민, 외국인 노동자, 난민, 결혼이민자, 유학생까지로 확대해야한다.

마. 이민자 중 90%가 비국적자로써 법무부관리 대상이므로 이민정책차원이라는 큰 틀안에서 사회통합정책을 주무부서로 책임져야하며, 노동부, 여성부, 복지부, 교육부, 행자부 등 관련부처는 적극 협력해야한다고 본다.

바. 사회단체의 역할은 정부가 마련한 사회통합정책의 기조하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지자체)의 역할을 감시하고 비판하며,  창의적이고 헌신적인 통합모델을 제시하고, 사회통합이 이루어지도록 적극 협조하므로 제 역할을 감당해야한다. 

나가며

본 강연자는 유럽사회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고 본다. 특히 그들의 시행착오와 실패경험에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유럽은 분명 이민 선진 국가이다. 그러나 이민정책이나 사회통합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오히려 점점 심각한 양상으로 진전되고 있다. 한국은 이제 막 이민국가가 되었으며 다문화사회로 진입하였다. ‘사슴을 쫒다보면 태산을 못 본 다’ 는 말이 있다. 눈앞의 문제만 해결하려들기보다는  전체를 보고 , 미래를 보는 시각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신상록 목사
포천다문화가정지원센터 소장, (사)함께하는다문화네트워크 상임이사, 성결대다문화평화연구소부소장, 재외동포신문편집위원, 법무부사회통합정책심의위원, 라디오21 전문가방송 ‘신상록의 지금은 다문화시대’ 생방송진행자, 푸른초장교회 담임목사, 상명대한국언어교육연구원 다문화강사.